[다시 일본경제에서 배운다]공공부문 개혁… 부활을 부르다

  • 입력 2006년 3월 30일 03시 03분


지난해 9월 11일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자 도쿄(東京) 주식시장엔 활기가 넘쳤다. 선거 다음 날 닛케이 평균주가는 1.6% 올라 2001년 6월 이후 4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경단련(經團連)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회장은 “일본 경제의 성장세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외신들도 “집권당의 개혁 노선이 일본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은 결과”라며 자민당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일본 경제의 회복을 꼽았다.

▽‘내 군살부터 뺀다’ 공공 개혁의 성과=일본 공무원 사회는 지난달 10일 온종일 술렁댔다. 고이즈미 개혁의 완결판으로 불리는 행정개혁 관련 법안이 각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공무원 인건비와 정원을 향후 5년간 5% 줄이고 국책은행 성격의 정책금융기관 8곳을 2008년까지 1곳으로 통합하며, 정부 보유 자산을 과감히 팔아치워 국가 부채를 줄인다는 게 골자. 인원 감축과 보수체계 조정 등은 정부 산하기관과 국립대에도 똑같이 적용하기로 했다.

관가 일각에서는 ‘총리의 임기가 끝나는 9월까지만 버티자’는 말도 나왔지만 대세는 공무원도 개혁의 대상에서 열외일 수 없다는 쪽으로 굳어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언제든 저항은 있는 법”이라며 “그렇더라도 (공무원들이) 개혁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공무원들의 동요를 알면서도 이처럼 느긋한 반응을 보인 것은 5년간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이해집단을 다루는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구조개혁 없이 성장 없다’=고이즈미 정권이 출범한 2001년 일본 경제는 최악의 상태였다. 한 해 동안 도산 기업이 1만9000개를 넘었고, 이 여파로 은행권 부실채권은 30조 엔(약 255조 원)에 이르렀다.

기업의 잇단 감원 조치로 ‘평생직장’의 신화가 무너지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 실물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의 그늘이 깊어졌고, 실업률이 5%를 넘어 거리엔 청년 실업자가 넘쳐났다.

고이즈미 정권이 경제 회생의 해법으로 택한 것은 ‘작은 정부’와 ‘규제 완화’. 공공사업 투자비를 절반 이상 줄이고 행정 간소화를 목표로 지방자치단체의 통폐합을 추진했다. 역대 정권의 공공지출 확대가 기업의 ‘관(官) 의존’ 체질을 심화시켜 경기를 살리기는커녕 재정적자만 늘렸다는 반성에서 정반대의 발상을 한 것이다.

지난해 공공사업 투자비는 8조2000억 엔으로 1998년 당시 ‘사상 최대의 경기대책’ 명목으로 풀려나간 16조6500억 엔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지금이 훨씬 좋다. 또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찾아내 3년간 1000건 이상을 철폐했다. 지역 특성에 맞는 규제개혁 특구를 500곳 이상 설치하는 한편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공기관이 독점했던 공공부문 서비스도 민간에 개방하고 있다.

현 정권의 구조개혁 원칙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관(官)에서 민(民)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집약된다. 관료 우위의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 공공사업의 민영화를 밀어붙인 것도 ‘민간이 잘하는 사업은 민간에 맡긴다’는 정신에 따른 것이다.

▽공공개혁-기업재생-금융안정 선순환=일본 경제의 부활은 기업 실적의 개선이 바탕이 됐다는 점에서 민간 주도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순히 경기를 떠받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공부문 개혁과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기(氣)를 살렸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와타나베 오사무(渡邊修) 일본무역투자진흥기구(JETRO) 이사장은 “정부가 스스로 모범을 보이겠다며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이 일본 경제 부활의 견인차가 됐다”며 “정부가 기업 활동의 후원자로 나선 것만으로도 기업들은 든든한 원군을 얻은 셈”이라고 진단했다.

기업의 실적 개선은 고용 증가와 소비 촉진, 주가 상승이라는 선순환을 거쳐 다시 기업의 이익을 늘리는 효과를 냈다. 기업의 자금사정이 좋아지면서 도무지 줄어들 것 같지 않던 막대한 부실채권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2002년 9월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당시 경제재정금융상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을 3년 안에 절반 이하로 낮추겠다”고 선언하자 일본 금융계는 물론 해외에서도 ‘무모한 목표’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지난해 3월 결산 결과 2002년 8.4%였던 부실채권 비율은 2.9%로 낮아졌다.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일본 경제의 부활은 기업과 금융 현장에서 소리없이, 하지만 착실하게 진행돼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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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경제자문회의 위원 혼마 교수 인터뷰▼

“일본 경제의 부활은 시대 흐름에 맞는 개혁 정책이 제때에 나왔기에 가능했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잘 되려면 민간 부문의 역할 못지않게 정부 기능이 중요하다는 점을 실증한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일본 총리 산하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민간위원인 오사카대 혼마 마사아키(本間正明·62·경제학·사진) 교수는 “개혁이 의도한 성과를 내려면 방향을 올바로 잡아야 한다”며 “‘작은 정부’와 시장 중시, 규제 완화를 테마로 정했다는 점에서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은 시작할 때부터 성공 확률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해집단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부’ 정책으로 경제 재생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는 한국에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며 “책임 있는 집권자라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큰 정부’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경제가 다시 살아난 요인을 꼽는다면….

“탄탄한 기술기반을 보유한 제조업이 장기불황에서 일본을 구해낸 주역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재생의 여건을 만들고 분위기를 조성한 정부의 역할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순서를 따지자면 정부가 구조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모범을 보이니까 민간이 호응한 것이다.”

―현 정권의 개혁 정책은 역대 정권이 시도한 개혁과 어떤 차이가 있나.

“거품 붕괴 이후 일본 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은 단순했다. 경기가 나빠지면 공공사업에 돈을 쏟아 부어 인위적으로 경기를 띄우고, 악화되면 다시 막대한 예산을 동원하는 식이었다. 이런 관행이 되풀이되자 기업들은 살아남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힘들 때마다 정부에 기대려 했다. 무분별한 공공투자 확대가 재정적자를 늘린 것은 물론 민간의 자생력까지 갉아먹은 것이다. 현 정권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식의 처방으로는 불황 극복이 어려움을 절감했다.”

―일본 경제의 과제를 꼽는다면….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민간의 비능률은 거의 사라졌지만 정부 쪽에선 개선할 여지가 여전히 많다. 전통적으로 관(官)의 입김이 센 일본에서 정부 조직의 비효율적 요소를 존속시키면 다음 세대에 큰 부담이 된다. 막대한 재정적자의 축소와 방만한 정부부문의 개혁이 일본 경제의 시급한 과제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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