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새 이민법 ‘게스트 노동자’ 진통

  • 입력 200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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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새로운 이민법안 제정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9·11테러 이후 외국인에게 더 배타적으로 변하고 있는 미국의 자화상이다.

진통의 핵심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4년 초 제시한 ‘게스트 노동자(Guest Worker)’ 조항을 법안에 넣느냐 마느냐다. 비록 현재 불법 체류 외국인이라도 당국에 자진 신고한 뒤 위조가 불가능한 허가증을 정식으로 발급받아서 3년씩 2차례, 최장 6년까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자는 구상이다. 단, 그 일자리가 ‘미국인은 희망하지 않는 (허드레) 일’임을 고용주에게서 확인받아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달 말 상원 법사위원회 표결을 앞두고 지난주부터 미 전역을 돌면서 “이민 때문에 강해진 미국은 일하려는 이민자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그들의 꿈을 외면할 수 없다”며 조항 삽입을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전통적 지지층인 기업인과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돼 버렸다.

호텔 객실 청소, 음식점 설거지, 파인애플 수확, 건설 막일꾼 등 영어능력이 없어도 일할 수 있는 저임금 불법 노동자가 절실한 재계는 ‘한시적인 합법화’ 구상에 찬성한다. 그러나 기독교 보수파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구제할 수 없다. 추방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현재 여론은 유동적이다. 올 1월 시사주간 타임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6%는 “게스트 노동자 방식은 찬성한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는 일단 본국으로 돌려보낸 뒤 정식으로 신청하도록 하자”고 답했다. 50%는 불법 체류자는 무조건 추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민법 개정 논란은 2008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공화 민주 양당의 대선 후보군이 가세하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대선 예비주자들이 모두 이 문제를 ‘자기 색깔 드러내기’의 소재로 삼고 나선 것이다.

당장 23일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빌 프리스트 의원이 부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게스트 노동자 제도에 반대하고 국경 봉쇄 강화조치를 담은 새 법안을 다음 주 상원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공화당 상원의 1인자 자리에 오른 것은 부시 대통령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보수계를 등에 업고 2008년을 노리고 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의원도 이민법안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날 핵심 쟁점에 대한 의견 표시는 안 했지만, ‘불법 체류자를 돕는 사람도 불법 행위자로 볼 수 있다’는 법안 조항을 문제 삼았다.

그는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 구절을 인용하면서 “성직자라도 불법 체류자를 도울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이해하는 성경과 다른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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