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망상에 망했다

  • 입력 2006년 3월 1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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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침공하기 직전까지도 사담 후세인(사진) 전 이라크 대통령은 미국이 감히 이라크를 침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미국이 공격을 시작한 뒤에도 후세인은 미국이 한낱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호언했다.

당시 후세인의 통역관을 비롯한 측근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증언했다. 후세인의 이런 무모한 전략적 판단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미 합동전력사령부(USJFCOM)는 최근 이라크전쟁 때 입수한 이라크 정부문서 수십만 건과 이라크 고위관계자 수십 명의 증언 자료를 전문가들에게 맡겨 2년여 동안 분석한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미 외교협회(CFR)가 13일 ‘사담의 망상’이라는 제목으로 웹사이트에 이 보고서 요지를 실었다.

미국의 공격 가능성이 없다는 후세인의 판단 근거는 무엇보다 이라크에 막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프랑스와 러시아가 미국의 침공을 막아 줄 것으로 굳게 믿은 데서 비롯됐다. 나아가 전쟁이 개시된 뒤에도 미국이 국제적 비난 압력에 굴복할 것으로 믿었다.

이 같은 후세인의 망상은 근본적으론 아첨과 거짓 보고가 판치는 독재체제 말기의 극단적 행태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후세인은 좋은 소식만을 원했고 진실을 보고하는 부하는 가차 없이 숙청했다. 핵심 요직은 배신의 염려가 없는 자신의 아들들과 무능력한 친척들에게 나눠 줬다. 하지만 그의 둘째아들 쿠사이마저 후세인을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2002년 말 공화국수비대는 사령관 회의를 소집해 이라크 방어계획을 브리핑했다.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몇 km 간격으로 빨강 파랑 검정 노랑의 원(圓)을 그린 뒤 미군이 접근할 때마다 차례로 철수한 뒤 마지막 빨간색 선에서 최후까지 싸운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이었다. 반론이 제기됐지만 들려오는 건 “후세인의 결정”이라는 말뿐이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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