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요, 5년전 피플파워 주역서 타깃으로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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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파워(민중 혁명)’의 3번째 희생자가 나올까.

2001년 1월 ‘2차 피플 파워’로 집권한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벼랑 끝에 몰렸다. 수도 마닐라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글로리아를 몰아내자’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하야 요구를 하고 있다.

필리핀을 20년 동안 통치해 왔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1986년 ‘1차 피플 파워’로 축출될 때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또 2001년 당시 뇌물 수수 혐의로 권좌에서 쫓겨난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에 이어 ‘피플 파워’의 칼날이 이번에는 아로요 대통령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민주보다 빵이 먼저=아로요 대통령이 하야 위기에 처한 요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경제난.

1970년대 초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나가던’ 국가 경제가 파탄 직전이다. 인구 8400만 명 가운데 40%가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했다. 1970∼2003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6%에 그쳤다.

1971년 1인당 국민소득이 206달러로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을 앞질렀으나 현재는 태국의 3분의 1 수준인 1000달러에 불과하다.

국가부채는 1000억 달러에 이르러 정부 세입의 47%를 이자 갚는 데 쓸 정도.

재정난 때문에 교육투자는 199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4%에서 지난해 2.4%로 떨어졌다. 보건 분야 지출은 0.5%에서 0.19%로 추락했다.

2004년 다시 당선된 아로요 대통령은 일자리 600만 개 창출,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확대를 통한 경제난 해결을 ‘공언(公言)’했지만 ‘공언(空言)’이 됐다.

▽군부 장악 실패=아로요 대통령은 1961년 9대 대통령에 당선됐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이란 후광을 업고 정계에 입문했지만 군 지지 기반이 취약한 것도 문제다.

이를 의식한 듯 아로요 대통령은 2004년 취임 직후 옛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매관매직을 통해 부를 축적해 온 정치군인의 강제 전역과 군 예산 투명화를 통한 군 개혁을 약속했지만 구두선(口頭禪)에 그쳤다.

결국 2003년 7월 군 개혁을 주장하는 사관학교 출신 소장파 장교들의 쿠데타 기도사건으로 불거졌다. 또 일부 정치장교들이 아로요 대통령에 반기를 든 정치인, 기업인들과 연계해 쿠데타를 일으킨 뒤 ‘혁명평의회’를 출범시키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22일 군 당국이 발표했듯이 쿠데타 음모를 비롯해 아로요 대통령의 축출을 노린 쿠데타 기도는 공식적으로만 6차례다.

지난해 7월에는 아로요 대통령의 남편이 불법 도박 조직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아들과 가족들이 연루된 부정 의혹도 이어졌다.

‘피플 파워’ 20년이 되는 25일 예정된 대규모 반정부 집회는 아로요 대통령 하야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편 코라손 아키노(73) 전 대통령은 피플 파워의 동지였던 아로요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이날 수도 마닐라에서 노란색 상의 차림으로 반(反)아로요 시위를 이끌며 “아무도 다시 민주주의를 빼앗지 못하게 해야 한다. 권리 회복을 위해 계속 봉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가 반아로요 진영의 선봉장이 된 계기는 지난해 5월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 시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아로요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 약속을 내팽개친 채 대권욕에만 집착한 나머지 표를 조작해 집권에 성공했다며 배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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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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