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 성취상’ 받은 英장애인 예술가 앨리슨 래퍼씨

  • 입력 2005년 12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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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은 아예 없고 다리는 자라다 말았다. 그래도 발과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영국의 장애인 예술가 앨리슨 래퍼(40) 씨가 ‘세계 여성 성취상’을 수상했다.

모성(母性) 및 장애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예술작품으로 사회에 기여했다는 점이 수상 이유. 지난달 29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제2회 ‘위민스 월드 어워즈(Women’s World Awards)’ 시상식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래퍼 씨에게 트로피를 수여했다.

래퍼 씨는 임신부가 수면제·신경안정제를 복용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해표지증(海豹肢症·팔 다리가 물개처럼 짧아지는 증세)을 안고 태어났다.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져 복지시설에서 자랐다. 21세 때 결혼했지만 남편이 폭력을 휘둘러 9개월 만에 헤어졌다.

누구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있던 미술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다.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가 된 것이다. 래퍼 씨는 자신을 팔이 없는 조각 작품 ‘밀로의 비너스’에 빗대 ‘현대의 비너스’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콤플렉스를 이겨냈다.

최근 그는 모델로 더 유명해졌다. 영국 조각가 마크 퀸 씨가 임신 9개월의 그를 모델로 해 만든 ‘임신한 앨리슨 래퍼’라는 5m 높이의 작품이 런던시의 공모전에서 뽑혀 9월부터 트래펄가 광장에 세워진 것. ‘볼썽사납다’ ‘아름답다’는 등 논란이 분분했다.

당시 래퍼 씨는 “사람들은 불편한 것을 피하려 하지만 내가 저 위에 세워져 있는 한 더는 나를 피할 수 없다”며 “장애가 있는 사람이 천박하지도 못생기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않다는 점을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섯 살 난 아들 패리스 군을 키우고 있는 그는 보통 엄마들이 하는 일을 입과 발로 거뜬히 해낸다. 어려서 의수를 잠깐 착용하기도 했지만 장애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벗어 던져버렸다.

래퍼 씨는 작은 스펀지를 입에 물고 아들의 머리를 감겨 주고 특수 제작된 유모차를 어깨로 밀며 아이와 공원을 산책한다. 그는 현재 서식스에 거주하면서 육아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저서 ‘내 손 안의 인생’과 자신의 웹 사이트(www.alisonlapper.com) 등을 통해 장애인 문제를 부각시켰으며, 가정 내 폭력 등 여성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도 앞장섰다.

‘위민스 월드 어워즈’는 오스트리아 작가 게오르크 킨델 씨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2000년 창설했다. 세계 여성 성취상을 비롯해 10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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