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약점 17가지를 공략하라”

  • 입력 2005년 6월 16일 03시 25분


최근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동유럽, 중동 등 세계 곳곳을 휩쓸고 있는 시민혁명의 열풍 뒤에는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교과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NTV 등 러시아 언론들은 15일 미국의 정치학자 진 샤프(77) 박사의 저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From Dictatorship to Democracy)’가 최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어판으로 출간됐다고 전했다.

1993년 태국 방콕에서 미얀마의 망명 민주화 운동가들을 위해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중국어 우크라이나어 세르비아어 아제르바이잔어 키르기스어 등 18개 국어로 번역돼 나올 때마다 현지의 민주화운동을 고조시켰다.

혁명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이 아니라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 독재정권의 약점 17가지를 들면서 ‘아무리 완고한 독재정권도 약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빨리 찾아내 공략하라’는 식이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저자인 미국의 정치학가 진 샤프 박사.

예를 들면 독재가 일상화되면 독재자에게는 정확한 보고가 올라가지 않으며 권력을 수호해야 할 군과 경찰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허점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라는 것.

또 ‘변혁의 4대 메커니즘’을 항상 명심하고 적절하게 이용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선 △고통스러운 탄압을 오히려 반체제운동 구성원들이 ‘우리가 옳다’는 확신을 갖는 계기로 전환시키고 △처음엔 독재권력이 큰 위협을 느끼지 않는 사소한 요구로 시위를 시작해 △점차 체제를 무력화시키라는 것이다. 또 저항운동이 격화돼 지도부도 시위군중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을 조심하라는 충고도 있다.

체스 세계챔피언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항해 반정부운동을 이끌고 있는 가리 카스파로프 씨는 이날 러시아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어판으로 나온) 이 책이 우리의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흥분했다.

이 책은 ‘발칸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 정권을 붕괴시킨 2001년 구유고의 시민혁명을 시작으로 2003년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온 그루지야의 장미혁명,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올해 초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의 성공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세르비아의 ‘오트포르(저항)’와 그루지야의 ‘크마라(이제 그만 됐다)’, 우크라이나의 ‘포라(때가 왔다)’, 키르기스스탄의 ‘켈켈(우리와 함께)’ 등 저항운동 그룹들이 한결같이 이 책을 ‘혁명의 기본지침서’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민주화운동의 바이블’로 불린다.

옥스퍼드대 정치학박사로 미국 다트머스의 매사추세츠대 교수를 지낸 샤프 박사는 1983년 비폭력 저항운동을 연구하는 비정부기구(NGO)인 아인슈타인연구소를 세워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사회권력과 정치적 자유’ 등 그의 다른 저서들도 1980년대 폴란드의 반체제운동과 1990년대 초 발트3국의 탈소(脫蘇)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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