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딥 스로트’]워터게이트 사건이란

  • 입력 2005년 6월 2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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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은 권력과 언론의 한판 승부였다. ‘워터게이트’는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빌딩군(群) ‘워터게이트 호텔 콤플렉스’에서 따온 것. 그 뒤 권력형 비리를 ‘∼게이트’로 부르는 게 유행이 됐다.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민주당 조지 맥거번 후보가 맞붙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72년 이 빌딩군에 민주당 전국위원회(선거대책본부에 해당) 사무실이 있었다. 6월 17일 오전 2시 반 사무실에 괴한 5명이 침입했다가 체포됐다. 경찰은 단순 절도사건으로 처리하고 백악관 대변인도 ‘3류 절도사건’이라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풋내기 경찰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씨는 뭔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들에게 마크 펠트 씨가 ‘딥 스로트’가 됐다.

이들은 펠트 씨의 제보를 바탕으로 절도범의 자금을 추적해 ‘닉슨 재선위원회(CRP)’의 자금이 도청에 쓰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닉슨 대통령은 의회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해 온 사실이 밝혀지고 탄핵 절차가 진행되자 1974년 8월 8일 저녁 방송을 통해 사임을 발표했다.

딥 스로트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펠트 씨와 워싱턴포스트의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기자, 벤저민 브래들리 편집국장 등 4명뿐이었다. 두 기자는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가 물었을 때도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딥 스로트에 대한 추정도 무성했다. 닉슨 대통령 당시엔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렉산더 헤이그 비서실장이 딥 스로트로 강력히 지목됐다.

33년간 숨겨진 워터게이트의 딥 스로트가 드러남에 따라 이 사건의 의미도 재평가될 전망이다. 펠트 씨가 미국연방수사국(FBI) 복무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업무 중 취득한 정보를 기자들에게 폭로한 이유는 ‘국익’이 아닌, 자신의 승진을 누락시킨 닉슨 대통령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비롯된 ‘개인적 원한’의 결과란 분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의 딥 스로트 역할에 역사적 평가를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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