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엔 과거반성 공감대가 없다…獨일간지 논설위원 FT기고

  • 입력 2005년 5월 10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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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나치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게 가능했다. 일본은 독일과 다르다.”

지난달 14일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독일처럼 철저한 과거사 반성을 해야 한다”는 야당 의원의 주장을 이렇게 반박했다.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방문 중이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일본은 2차대전에 대해 충분히 반성했다. 세계 각국이 일본의 이런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의 클레멘스 베르긴 논설위원은 10일자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조목조목 재반박했다. 다음은 기고문의 요지.

‘독일은 히틀러를 희생양으로 삼고 나치를 별종인 것처럼 만들어 과거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마치무라 외상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독일도 전쟁 직후에는 몇몇 나치 지도자에게 책임을 떠넘겼으나 1968년 전쟁 범죄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임을 묻는 학생 시위를 계기로 과거사 논쟁이 4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는 나치 범죄로부터 독일 사회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수백만 명의 징용자를 고용한 산업계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체 실험에 가담한 과학자들도 나치 범죄의 공범자였던 것이다.

독일 사회에는 이런 과거사에 대한 꾸준한 반성이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는 적절한 방법이란 공감대가 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도 8일 “독일은 그 (만행에 따른) 고통이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는 이런 공감대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일본 역사교과서는 난징(南京) 대학살 같은 일본의 만행을 왜곡하거나 아예 삭제해 버리고 있다. 보수우파는 일본 역사를 비판하는 것이 일본을 국내외적으로 약화시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은 그만큼의 보상을 받게 된다. 2차대전 때 적국(敵國)이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일본이 앞으로 (독일처럼) 이웃 국가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과거사에 대한 보다 철저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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