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도쿄대공습 60주년’ 남탓만 하는 日本

  • 입력 2005년 3월 10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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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5년 3월 10일 0시 8분. 미군 B-29 폭격기 300여 대가 일본 도쿄(東京) 시내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2시간 동안 쏟아진 폭탄만 1800t.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4만여 명이 다쳤다. 주택과 건물 27만 채가 무너졌다.

일본의 한 역사교과서는 “동서 5km, 남북 6km에 걸쳐 소이탄을 투하해 화벽(火壁)으로 사람들의 퇴로를 차단한 뒤 융단 폭격으로 약 10만 명을 살해했다”고 적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의 피해자가 3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때의 폭격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시신 중 65%는 남녀 구별조차 안 될 정도로 처참했다. 끝내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시신도 7만 구에 이른다.

한 대학 교수는 “일본 국민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도쿄 대공습의 충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공습 60주년인 10일 도쿄에서는 일본 왕족이 참석한 공식 추모식을 비롯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행사가 잇따랐다.

우익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처음부터 일반 시민을 목표로 삼은 대량학살 작전으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일본만 억울하게 당했다’는 감정 일색이다.

전시 상황이라지만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을 불사한 폭격이었다는 점에서 일본인 유족들의 원망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일본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 국가들이 어떤 참상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돌리는 게 지금의 일본 사회다.

을사늑약 및 러-일전쟁 10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 2005년만큼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들이 10년 또는 100년 단위로 획을 긋는 해가 또 있을까.

일본의 ‘60주년 기념 시리즈’는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이어 8월 15일 패전기념일에서 절정에 이를 것이다. 일본 정부가 주최하는 어느 한 행사에서라도 ‘내 탓이오’라는 자성의 소리가 나온다면 60년 전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희생자들의 넋도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박원재 도쿄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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