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패권국 없는 ‘동아시아 공동체’

  • 입력 2005년 2월 10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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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의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발표했다. 일본이 아시아 지역 단결을 시도하는 것으로는 역사적으로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중일전쟁 과정에서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 총리 등이 제기한 대동아 공영권 구상이다. 1943년 개최된 대동아 회의에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와 영국령 말라야(현 말레이시아) 대표를 초대하지 않은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아시아의 단결은 곧 일본의 영토 확장을 뜻했다. 결국 이 시도는 파괴적인 전쟁으로 이어지고 실패로 끝났다.

두 번째는 1980년대로 미국이 일본뿐 아니라 동북·동남아 국가와 빈번하게 무역마찰을 빚던 무렵이었다. 전후 일본은 냉전 구도를 이용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을 한국과 동남아에서 찾으려 했다. 일본경제의 경쟁력이 약하던 시대에는 이 정책이 미일 관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미일 무역대립이 격화됨에 따라 미국은 아시아 지역 경제통합에 부정적 견해를 강하게 드러냈다.

미국 정부가 무역·금융자유화 압력을 높여 감에 따라 아시아 각국은 방어적 태세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처럼 미국의 리더십에 정면으로 맞서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과 한국에 대미관계의 긴장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시아의 발언권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호주와 일본의 요청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발족한 것이 이때였다. ‘아시아태평양’이란 단어에는 미국을 배제하지 않지만 미국에 따르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2003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과거 두 번의 시도와 현저히 다르다.

무엇보다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다. 2002년 이후 장쩌민(江澤民)에 이어 등장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아래 중국은 동남아, 남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해 왔다. 고이즈미 총리의 구상은 중국이 주창한 ‘지역 단결’에 대해 일본이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ASEAN 각국은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와의 관계 강화에는 의미를 두지만 거품경제 붕괴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일본과의 관계 강화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고이즈미 총리가 주창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동아시아 단결의 주도권은 여전히 중국의 손에 쥐어져 있다.

하지만 단독으로 패권을 쥐려는 일본의 구상대로 되지 않을수록 동아시아 공동체 협의는 더욱 진행돼 나가야 한다.

한국이나 ASEAN 각국은 중국이나 일본이 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독점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시아에서 특정 국가가 패권을 가진 통합은 바림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안전보장 측면에서 여전히 대립이 남아 있는 중국, 일본, 한국, ASEAN이기에 경제정책에 관해 협의를 진행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험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1980년대와는 달리 이번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의 반대도 적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에 아시아의 단결이란 일본의 패권과 같은 뜻이었다. 어떤 나라도 패권을 쥐지 않는 아시아의 지역협력, 그것이 동아시아 공동체에 맡겨진 숙제이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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