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정용길]미국私學서 해답 찾는 독일의 대학개혁

  • 입력 2005년 1월 28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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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의 역사는 길고 그 명성 또한 높았다. 하이델베르크대나 베를린의 훔볼트대는 학문의 자유, 진리의 전당이라는 대학 이념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미국의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대 등 명문 사학들이 설립 때 거울로 삼았던 게 바로 독일 대학이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바뀌었다. 독일 대학이 개혁해야 한다며 모델로 삼는 것이 미국의 명문 사학들이다.

그런 독일의 대학 개혁론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미국 스탠퍼드대의 총장(1992∼2000년)을 지낸 게르하르트 카스퍼 교수다. 독일 함부르크 태생의 이민자인 그의 재임기간 중 스탠퍼드대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1월 16일 베를린의 르네상스 극장에서 ‘대학 개혁’을 주제로 그의 강연이 있었다. 그는 최근 독일 대학 개혁의 주요 내용을 3가지로 요약했다.

먼저 ‘경쟁력 강화’. 독일 대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대학의 경쟁력이란 우수한 학생의 선발, 훌륭한 교수의 초빙, 더 많은 국고보조금의 수령, 동창들과 사회로부터 많은 후원금의 갹출 등을 뜻한다. 그러나 독일 대학은 모두 국립이라 학생 선발에서 경쟁이 있을 수 없다. 의대 치대 등 인기 학과로의 진학은 ‘ZVS’라는 대학배정센터가 결정한다. 교수 초빙을 위한 경쟁력도 모두 국립대라 약할 수밖에 없고, 국고보조금 후원금 등을 늘려 재정을 탄탄히 하는 능력도 외국 대학들에 비해 약하기 그지없다. 이제 독일에서도 고교생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교수도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경쟁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등록금’ 문제다.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선 돈이 든다. 그러나 독일 대학에선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 각 주의 사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학생들은 학생회비 정도만 낸다. 카스퍼 교수도 등록금 납부에 찬성한다. 독일 대학생들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세금 덕분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가난한 사람들도 낸 세금으로 부유한 아이들이 무료로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독일 대학 진학자의 85%가 중산층 이상이라는 통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립대 설립’ 문제다. 이미 독일에는 의학, 경영학 계통의 사립대가 설립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등록금이 비싸지만 졸업 후 취업이 잘된다. 그러다 보니 새 사립대의 설립 문제가 계속 제기된다. 물론 사립대는 등록금을 받고, 학생 선발이나 교수 초빙 등을 대학 스스로 한다.

물론 이런 개혁론의 맞은편엔 전통적인 대학상에 대한 향수도 작지 않다. 개혁 대상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실은 독일 대학의 장점이라는 것이다. 미국 사립대들처럼 엘리트교육이 아니라 자유분방하게 학문의 자유와 낭만을 누리는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독일 대학생들은 대개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니며, 또 5년이고 10년이고 무료로 공부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 요금과 각종 입장료의 특별 할인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특권은 차츰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경쟁체제가 몰려오고 있다. 독일은 지금 그들이 지켜 온 역사적 독일 대학의 모델과 현재 각광받고 있는 미국 명문 사립대 모델을 놓고 고민 중인 것이다. 우리의 대학 개혁 고민은 어느 지점쯤 와 있을까.

정용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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