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영국서 소설로 환생

  • 입력 2004년 8월 19일 22시 46분


코멘트
마거릿 드래블. 그녀는 ‘작가 가문의 일원’이다. 아버지 프레데릭, 언니 A S 바이어트, 남편 마이클 홀로이드 모두 작가다. 그녀에게 ‘한중록’을 선물했던 대산문화재단은 ‘레드 퀸’의 한국판 번역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마거릿 드래블. 그녀는 ‘작가 가문의 일원’이다. 아버지 프레데릭, 언니 A S 바이어트, 남편 마이클 홀로이드 모두 작가다. 그녀에게 ‘한중록’을 선물했던 대산문화재단은 ‘레드 퀸’의 한국판 번역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동아일보 자료사진
■ 英저명작가 마거릿 드래블 ‘레드 퀸’ 출간

《조선왕조 혜경궁 홍씨의 비극을 담은 ‘한중록(閑中錄)’이 저명한 영국 여성 작가의 손에 의해 영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영국 펭귄 출판그룹 산하의 바이킹출판사는 최근 영국 최고 수준의 여성 작가인 마거릿 드래블(65)의 신작 ‘레드 퀸(The Red Queen)’을 펴냈다. ‘레드 퀸’은 영국 여성 지식인이 ‘한중록’을 통해 뒤주에 갇혀 숨진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비극을 알게 된 후 얼룩진 자기 가족사를 극복해나가는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드래블씨는 2000년 대산문화재단이 세계적인 작가들을 초대한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여해 이 재단으로부터 한중록 영어판(Memoirs of a Korean Queen·영국 케건 폴 출판사)을 선물 받았다. 그는 “드라마틱한 비극과 감정을 절제한 문체에 매료돼 단숨에 읽고는 새 소설의 소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해외 저명 작가가 한국을 전면적으로 다룬 장편소설을 펴낸 것은 펄 벅 여사가 1969년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The Living Reed)’를 발표한 것 등 손꼽을 정도다.

혜경궁 홍씨를 가리키는 제목인 ‘레드 퀸’은 조선왕조의 영 정조시대부터 월드컵이 열리는 현대 한국까지를 오가며 정적인 ‘아침의 나라’와 역동적인 오늘의 한국을 높은 문학적 기법들을 동원해 그려내고 있다.

‘레드 퀸’에서,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혜경궁 홍씨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 처절했던 남편의 죽음과 궁중 분위기 등을 들려준다. 여기에 드래블씨는 부자갈등에 관한 그리스 신화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까지 병치시켰다.

한국의 학술회의에 참석하게 된 영국 여성 바라라 할리웰은 익명의 인물이 아마존닷컴을 통해 보내준 ‘신비스러운 책 한중록’을 읽게 되면서 매료돼버린다. 편집증적인 정신분열증을 앓아온 그녀의 남편은 자살을 시도했다. 그 배경에는 남편에 대한 시아버지의 집요한 억압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자기 아들을 병으로 잃어버린 상실감을 갖고 있던 할리웰은 ‘비극의 레드 퀸’과 이상한 일체감을 갖는다. 그녀는 한국에 와서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경기도 화성 등 ‘한중록’의 배경을 찾아다니면서 자기 슬픔의 출구를 향해 가슴 벅찬 걸음을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이화여대, 현대와 대우, 월드컵과 히딩크, 경주 엑스포, 소주와 비빔밥, 김대중과 김정일 등 현대 한국의 풍경들이 절절히 소개된다.

서울대 김성곤 교수(영문학)는 “‘레드 퀸’의 출판은 하나의 문학행사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며 “엄청난 돈을 들여 직접 광고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파급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 마거릿 드래블은 英 최고 문학상 수상 페미니즘문학 이끌어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E M 포스터’ 상을 수상한 작가로 부커상 수상 작가인 언니 A S 바이어트와 함께 “환생한 브론테 자매”로 불리고 있다. ‘세븐 시스터즈(The Seven Sisters)’ ‘상아의 문(The Gate of Ivory)’ 등 10여권의 작품을 통해 영국 페미니즘 문학을 이끌어 왔으며 아동정신병 기금, 캄보디아 구호기금을 위한 사회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