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절부절’ 워싱턴DC…BBC ‘테러경보 피로증후군’ 소개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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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겉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 밖에 놓인 신문을 집어 쏜살같이 들어오지도, 출근할 때 헬멧을 쓰고 나가지도, 아이들을 집안에만 가둬 두지도 않는다. 하지만 불안과 걱정은 끝이 없다. 아멘.”

올해 8월 1일 테러 위협수준이 오렌지(높음)로 격상된 이후 미국 수도 워싱턴DC 시민들이 겪는 나날을 소개한 대목이다. 영국 BBC는 최근 자사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레이 수아레즈의 ‘오렌지 코드 아래서 생활하기’ 특집기사를 실었다. 다음은 요약.

9·11테러 당일 아침 나는 포토맥강의 다리 위에서 펜타곤(국방부)에서 뿜어 나오는 검은 연기를 목격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고 만사가 예전 같지 않았다.

내 집은 미 부통령의 집에서 1.6km 정도 떨어져 있다. 기묘하고도 새로운 전쟁의 전선에 있는 셈이다. 어젯밤에도 나는 늦게까지 천장을 주시하며 초계비행을 하는 전투기들이 내는 폭음을 들었다.

가까운 우체국이 미국 상원의원 한 명에게 보낸 탄저균 편지로 오염됐다는 얘기가 들렸다. 이후 편지 배달이 끊겼다가 재개됐고 다시 끊겼다. 가스와 전기요금 청구서도 도착하지 않았다. 가스, 전기회사에서는 연체걱정을 하지 말라고 한다. 설마 계엄령은 아니겠지.

최근 딸과 함께 유니언역에서 열리는 전국 언론인협회 모임에 참석했다. 중무장한 경찰이 가방을 검색하고 경비원들이 출입구를 막았다. 40분이 지나도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백악관 지붕에나 있는 줄로 알았던 저격수들이 무기를 번득이며 거리를 순찰 중이다. 로널드 레이전 전 대통령 장례식 때는 반경 1.6km 이내에 주차된 모든 차들이 견인됐다. 내 차를 어디 가서 찾는담?

백화점에서 홀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던 토머스 대슐리 민주당 상원대표를 요즘은 보기 힘들다. 의회가 탄저균 공격목표가 된 뒤 그는 시민들로부터 멀어졌다. 시민들은 그를 만나기 전에 경비원들을 먼저 만나야 한다.

시민들은 언론계에 있는 내가 테러경보 격상 배경을 더 많이 알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제가 “휴가 때 스페인으로 놀러가는 것이 안전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허탈해졌다. 테러경보가 연발되면서 ‘경보 피로증후군’이라는 말이 나돈다. 35개월 동안 다음 테러가 언제 일어날까 기다리다 보면 피곤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어느 후보가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까?”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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