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에이즈 고아’ 1300만명 돌파… 감염 악순환

  • 입력 2004년 7월 14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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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미래가 병들고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서는 부모 중 1명 이상을 에이즈로 잃은 ‘에이즈 고아’(18세 미만)가 2010년경 1800만명에 이를 전망이라고 유엔 및 각국 전문가들이 13일 태국에서 열린 국제에이즈회의에서 경고했다.

이 지역에서는 또 더 높은 임금과 좋은 환경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의료인력의 숫자가 급증해 공공의료체계도 붕괴 위험에 직면한 상태다.

▽급증하는 에이즈 고아=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유엔 HIV·에이즈공동계획, 미국 국제개발청이 공동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에이즈 고아는 지난해 현재 1230만명. 전 세계 에이즈 고아 1500만명의 82%를 차지한다. 올해 13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2010년까지 50% 정도 증가해 180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이 지역에서 2000년 이후에만 380만명이 새로 에이즈 고아가 됐다.

보고서는 성인 에이즈 치료와 예방에 지나치게 치중해 에이즈 고아 지원사업에 큰 구멍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 지역 고아 가운데 28%는 에이즈 고아다. 국가별 편차도 심해 짐바브웨는 78%, 잠비아는 60%에 이른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는 26%로 평균치와 비슷하지만 그 수는 무려 180만명.

캐럴 벨아미 UNICEF 사무총장은 국제에이즈회의에서 “에이즈 창궐의 가장 잔인한 유산은 에이즈 고아”라며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거대인구 지역에서 감염률이 높아지면 더 많은 고아가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에서 에이즈 고아 정책을 갖고 있는 나라는 2003년 말 현재 17개국에 불과하다. 에이즈 퇴치 운동가들은 에이즈 예방교육만으로도 에이즈에 걸릴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하며 연간 100억달러의 지원금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붕괴위기 직면한 의료체계=열악한 근로환경과 저임금, 에이즈에 시달리는 환경을 떠나 영국과 미국 등 해외로 이주하는 의료인력이 급증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3일 전했다.

아프리카에서 간호사 부족이 가장 심한 나라는 동남부에 위치한 말라위.

말라위 수도 릴롱궤의 중앙병원은 830개 병상을 보유한 비교적 큰 병원이지만 간호사는 적정 수준 532명에 턱없이 못 미치는 183명뿐이다. 그나마 자격증이 있는 간호사는 30명에 불과하다.

영어를 사용하는 간호사들은 대부분 영국으로 이주했다. 말라위뿐 아니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 가나, 케냐,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와나 출신들의 영국 이주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에 정착한 아프리카 출신 간호사도 3100여명에 이른다. 2020년에는 80만명으로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릴롱궤 중앙병원 간호사 흘랄라피 쿤케야니(36)는 “친구들은 나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한다”며 “조만간 영국으로 이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돈 들여 교육시킨 인력이 부자 나라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선진국의 무분별한 의료인력 수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997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한 ‘인권을 위한 의사들의 모임’은 조만간 아프리카 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성명은 “에이즈로 인해 수천명이 의약품을 기다리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의료인력 유출은 가뜩이나 허약한 의료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를 담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선택하려는 이주의 권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선진국들은 의료진을 수입하기보다 스스로 인력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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