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주한미군’ 요리

  • 입력 2004년 6월 2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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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격랑이 점점 강도를 높여 몰려온다. 돌이켜 보면 미 2사단에서 3600명을 빼내 이라크로 보내겠다는 2주 전 뉴스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미군 3600명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1차 파도는 1만2000명이 감축될 것이라는 더 큰 물결에 휩쓸려 버렸다.

다음 주엔 감축협상이 시작된다. 정부는 1년 전 미국이 감축계획을 통보했다는, 지금까지 감췄던 과거를 공개했다. 격랑의 규모가 놀랍고 속도는 숨이 가쁠 지경이다.

더 큰 파도를 예고하는 이도 있다. 미 민주당 대통령후보 존 케리는 당선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핵은 물론 병력 감축과 남북통일이 포함된 일괄 타결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미 의회예산국(CBO) 시나리오에는 2만8000명의 주한미군 육군을 1000명만 남기고 모두 철수하는 방안까지 들어있다.

▼미국이 먼저 변했다▼

이쯤 되면 미국이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고 판단해야 옳다. 우리가 변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닌지 묻기 전에 ‘미국이 변했다’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좌우를 둘러봐야 한다. 51년의 동맹 역사를 축적한 기존 한미관계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최근 서울에 온 미 정부 고위인사는 미국인 사이에 “왜 남한 방어를 위해 우리 아들들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 왜 한국을 위해 납세자들이 돈을 대야 하느냐”는 주장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동맹을 보수(補修)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주한미군을 빼면 한미관계에 무엇이 남는가. 주한미군은 양국을 이어주는 탯줄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탯줄을 바꾸자고 하는데 ‘탯줄은 생명줄’이라고 외치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복잡한 과제지만 단순화해서 생각해 보자. 주한미군을 한미 양국을 위한 요리로 가정하자. 요리사는 한국과 미국 정부다. 음식을 먹을 손님은 양국 국민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도 당연히 재료와 양념, 조리법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행동으로 개입해야 한다.

남자로 태어나면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 복무를 하는 것이 정상인 나라에서 안보는 바로 나의 문제다. 몇몇 정부관리가 밀실에서 다룰 대상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생각을 정리해 여론으로 모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나라가 시끄러워야 할 때다.

우선 어떤 요리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GPR)라는 큰 맥락에서 주한미군을 변화 대상으로 선택했다. 우리도 어떤 요리를, 얼마나 만들 것인지를 궁리해야 한다. 반드시 있어야 할 최소 규모의 주한미군과 전력(戰力)을 산정해 먼저 정부와 국민이 격론을 벌여야 한다.

둘째, 요리가 상을 가득 채울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음식을 부실하게 준비하면 손님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힘을 쓰지 못한다. 힘을 못 쓰는 손님을 노리는 적이 북한이다. 2000년 국방백서에서 정부는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우리 군에 비해 약 2배의 양적 우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북한 군사력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일방적인 미군 감축을 수락한다면 전 정부와 현 정부 중 한 쪽은 국민을 속이는 셈이다.

▼미군 변화 제대로 따져야▼

셋째, 미국이 생각하는 요리가 우리 입맛에 맞는지 점검해야 한다. 남한 방어를 위한 주한미군과 타국 출동대기용 미군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몇 년 뒤 주한미군이 한미동맹과 관련 없는 분쟁에 개입할 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현재 분위기로는 국민 다수가 여기저기 개입하는 주한미군을 용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라크 추가 파병을 지지한 여론의 배경에는 대북 억지력의 근원인 한미동맹의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국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다수 국민이 파병반대론을 간신히 막아낸 것이다.

한미 양국의 미래는 ‘주한미군’ 요리에 달려있다. 확실한 검증과 대책이 필요하다.

방형남 논설위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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