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철군’승부수 藥될까 毒될까

  • 입력 2004년 5월 20일 19시 01분


존 케리 미국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이 미군의 이라크 전면철군 카드를 꺼낸 것은 이라크 문제가 수렁으로 빠져드는 지금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해 대선의 승부수를 던질 최적의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케리 의원의 철군 구상=케리 의원의 철군 전략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어렴풋이 드러나 있다.

그는 “지난 세기 미국 대통령들은 국제기구를 매개로 서로를 존중하며 다른 나라에 다가가고 협력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처럼 독불장군식으로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뛰어드는 것이 아닌, 유엔 등의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적인 접근 방식을 강조한 것.

그러나 그가 “다른 나라를 설득해 이라크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겠다”고 말한 것은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기존 파병국이 철군하는 가운데 다른 나라의 추가 파병을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은 작업이기 때문.

또 철군 구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과연 부시 행정부와 얼마나 선명하게 차이점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시 행정부도 어차피 이라크에서 영구 주둔하는 게 아니라 철군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

문제는 이라크 상황이다. 이라크 상황이 수렁에 빠져들고, 주권이양 절차가 순조롭지 않을 경우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정이 불안한 상황에서 만약 미군이 이라크에서 바로 철군한다면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지도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를 감안한 듯 AP통신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공화당)도 1968년 대선에서 비슷한 말을 했지만 그가 당선된 뒤에도 베트남전쟁은 4년이나 더 지속됐다”고 덧붙였다.

▽케리 의원의 선거전략=케리 의원의 전략은 미군 철군 카드로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이 실패했음을 명백히 부각시키는 한편, 이라크 파병 장병 가족들의 지지를 끌어들이자는 것.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이 같은 전략을 세우게 만든 요인으로 보인다.

케리 의원은 시사주간 타임과 CNN 방송이 16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를 앞질렀다. 케리 의원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자가 51%,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겠다는 답변자가 46%로 나타난 것.

특히 미국의 대이라크 군사정책에 대한 지지 의견이 41%에 불과한 반면, 49%가 강력히 반대했다는 점에서 철군 카드의 효과를 기대한 것 같다. 이 같은 분위기에 맞춰 그는 대선 레이스를 향한 보폭도 점차 키우고 있다.

그는 “11월 대선에서 랠프 네이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곧 부시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000년 대선에서 네이더 후보가 민주당 후보인 앨 고어의 표를 잠식해 결과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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