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국민 53% ‘평화헌법’ 개정 찬성

  • 입력 2004년 5월 2일 18시 47분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제정된 현행 헌법의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개헌 금기(禁忌)’가 깨지면서 일본 정계의 헌법 개정 행보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3%가 ‘헌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조사에서 개헌 찬성 여론이 반수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일본 언론들은 “시기와 내용이 문제일 뿐 헌법 개정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고 전했다.

집권 자민당 헌법조사회는 이달 중 자체 개정시안을 발표하는 데 이어 내년 초 중의원과 참의원에 개헌안 제출 및 심의권을 갖는 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다.

▽봇물 터진 개헌 논의=5월 3일은 일본의 헌법기념일. 미군정 지배하였던 1947년 이날 전쟁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이 발효된 것을 기념해 공휴일로 지정됐다.

해마다 헌법기념일이 되면 개헌파와 호헌파의 공방이 치열했지만 올해는 논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분위기다. TV 토론 프로에서도 개헌세력의 공세에 호헌론자들이 밀리는 양상이 뚜렷하다.

역대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개헌 찬성 의견은 80년대 중반만 해도 30%에 못 미쳤지만 97년 처음으로 찬성(46%)이 반대(39%)를 앞지른 뒤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4월 초 요미우리신문의 조사에서는 개헌 찬성론이 65%인 반면 반대론은 23%에 불과했다. 81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찬성은 최고치, 반대는 최저치였다.

집권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인 내년 11월까지 당 개헌안을 확정한다는 방침.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시대 변화에 맞춰 헌법을 새로 만들자’는 취지의 ‘창헌(創憲)’ 개념을 들고 나왔다. 연립여당이지만 평화주의 색채가 짙은 공명당도 ‘가헌(加憲)론’으로 가세했다.

반면 일관되게 호헌을 고수해 온 사민당과 공산당은 지난해 11월 중의원 의원선거에서 15석을 얻는 데 그쳐 저항세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쟁점은 전쟁 포기와 자위대 격상=개헌론자들은 “헌법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무조건 바꿔선 안 된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도 개헌에 찬성한 이유로 ‘새로운 권리와 제도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 26%로 가장 많았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에는 환경권 및 프라이버시 관련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하지만 우익세력이 개헌을 밀어붙이는 속내가 헌법 9조 수정이라는 점은 개헌론자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헌법 9조는 전쟁 포기를 규정한 1항과 전력(戰力) 및 교전권을 금지한 2항으로 이뤄져 있다. 자민당과 민주당은 전쟁 포기 조항은 존속시키되 2항의 개정을 통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격상시키자는 데 잠정 합의한 상태. 자위대 해외파병에 따른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한다.

다만 동맹국이 공격을 당할 때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참전하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자민당은 허용을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헌법 9조에 대해서는 ‘바꾸지 않는 게 좋다’는 응답이 60%로 여전히 많았지만 ‘바꾸는 게 좋다’는 비율도 31%로 3년 전(17%)보다 높아졌다. 한술 더 떠 자민당 일각에선 징병제 부활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국방 의무’ 조항까지 신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계의 개헌 행보는 ‘누가 더 우익에 가까운지’를 과시하는 선명성 경쟁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도쿄신문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던 민주당이 개헌에 적극 나서면서 자민당이 보수 성향의 유권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좀 더 강한 주장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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