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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3월 21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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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미국 내 여론을 대변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진단이다.
스페인에서 터진 10발의 폭탄은 좌파정권을 탄생시켰고 43세의 총리 당선자는 전임자가 보낸 군대를 이라크에서 빼내겠다는 말부터 했다. 부시 대통령에게는 쓰디쓴 개전(開戰) 1주년 선물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19일 연설에서 “문명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라고 규정하며 새로 전개되는 테러와의 전선에서 후퇴하지 말라고 동맹국들을 독려했다. “대량살상무기로 평화를 위협하는 무법정권을 내버려두지 않겠다”며 유엔 결의 없이 ‘이라크 자유 작전’을 감행한 지 꼭 1년 만이다.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는 종래의 수사(修辭)는 이제 첨예하게 양분돼 가는 국내외 여론의 거센 저항을 받고 있다. 전선만 확대된 채 1년 전으로 완연히 회귀한 듯 보이는 상황 전개의 뒷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래의 국제사회 안정’을 위해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악의 축’을 근절한다는 ‘선제공격론’에 바탕한 ‘정의로운 전쟁’은 애초부터 국제법적 논란을 무릅쓰고 시작됐다. 이는 ‘공격적 일방주의, 도덕적 절대주의로 무장한 부시 행정부의 신외교정책’이라는 비판을 불러 왔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이러스를 찾아내 박멸하거나 해당 부위를 도려내는 서양의학과도 유사한 이 전략은, 왜 이상이 생겼으며 어떻게 해야 문제의 근원을 조화롭게 치유해 나갈까를 몸 전체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동양의학의 접근 방식과 선명히 대비된다. 유엔으로 상징되는 국제사회의 존재를 무시한 미국의 독단이야말로 오히려 주권수호를 위한 대량살상무기 확보 욕구를 확산시킨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
미국은 그사이 사담 후세인보다 소가 더 무섭다는 교훈을 얻는 기회가 있었다. 광우병으로 벽에 부닥친 쇠고기 수출을 다시 하게 해 달라고 일본에 머리를 숙였고, 파병 요구를 들어줬던 일본은 오랜만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꿈을 이뤘던 것이다. 작전으로 섬멸되지 않는 조류독감 같은 ‘생물학적 세계화’와 ‘테러의 세계화’는 자업자득의 속성을 갖는가.
다자적 협력의 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과 국제사회를 무시한 채 독주하는 독단주의는 다르다는 따가운 비판 속에서도 묵묵히 미국을 따르던 동맹국들의 전열이 이제 테러 공포 앞에서 주춤하고 있다.
동맹의 와해나 해체 가능성을 미국은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을까. 전쟁 훨씬 전에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미국의 목표에 따라 동맹이 결정되지 동맹에 따라 미국의 목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한때 이란을 제어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던 이라크는 이제 처단됐고,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지원했던 아프가니스탄도 앞서 정리됐다.
선과 악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확신, 정치 경제의 우위 못지않게 도덕성 선점에 대한 소명의식까지 강하게 내보이는 부시 행정부의 미국은 갈라지는 세계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비전 없이는 전쟁을 일으킬 수는 있어도 평화는 이룰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있을까. ‘참여’를 끌어내는 힘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박윤석 국제부 차장 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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