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테러배후 조작시도 드러나 ‘망신살’

  • 입력 2004년 3월 17일 19시 08분


스페인 정부가 11일 발생한 열차 폭탄테러의 배후를 사건 직후 바스크 분리주의 단체인 자유조국바스크(ETA)로 단정하는 바람에 곳곳에 망신살이 뻗쳤다.

테러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ETA가 자행한’ 폭탄테러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스페인이 안보리에 ETA 비난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로비를 벌인 결과다.

이후 알 카에다가 배후라는 증거가 속속 나오자 유엔이 머쓱해졌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안보리 이사국들이 난감해졌다”고 말했다. 유엔 주재 스페인 대사는 이사국들에 서한을 보내 “결의안이 채택된 때는 ETA의 소행인 것이 분명했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독일 정부도 스페인이 테러 배후를 ETA로 몰아간 것에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고 독일 제1공영방송 ARD가 16일 보도했다.

스페인 정보당국은 테러 직후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에 폭발물은 ‘티타딘’이며 이는 과거 ETA가 흔히 사용했던 것이라고 통보했고, 13일에는 폭발물이 ‘고마 2 에코’ 다이너마이트로 이 역시 ETA가 사용해 왔다고 정정했다는 것.

독일 정보기관의 한 소식통은 “우방 정보기관이 이런 식의 허위 정보를 제공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고 ARD는 전했다.

스페인 국내에서는 정부의 정보 조작에 휘둘린 책임을 둘러싸고 언론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국영 EFE통신 기자들은 16일 ETA가 테러 주범이라는 정부 주장에 미겔 플라톤 편집 책임자가 동조했다며 그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집권당을 밀어주기 위해 조작과 검열 상황을 조성했다는 것.

기자들은 “테러 직후 아랍어로 된 무선전화 통화내용을 알고도 보도하지 않았다”며 “급진 이슬람 테러조직에 관한 취재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노골적으로 금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베를린·마드리드=외신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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