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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3월 16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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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는 푸틴 정부의 외교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옛 소련처럼 크고 작은 국제 현안에 ‘오지랖 넓게’ 모두 개입하는 ‘전방위 외교’에서 벗어나 경제성장 등 시급한 국내 현안에 힘을 모을 수 있는 외부 환경을 만드는데 치중하겠다는 것이다.
▽푸틴식 실용외교=푸틴 대통령은 집권 초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내걸어 서방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정작 팽창주의나 강성 외교는 피했다. 오히려 서방과의 협력과 관계 개선을 우선시했다. 명분과 체면보다 국익과 실리를 따지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선택한 것.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의 러시아판 편집장인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박사는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해체 후 여기저기 ‘구멍이 뚫렸던’ 외교를 잘 수습했다”고 평가했다.
전임 옐친 정부는 일관성 없는 외교로 서방으로부터는 무시당하고 옛 동맹국과의 관계마저 소원하게 만들었다. 푸틴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정상화시켰다는 것이다.
▽친서방 정책에 대한 비판=그러나 서방에 대한 외교적 양보가 오히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장과 미국의 독주 등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일간 코메르산트는 “미러 협력관계는 우리가 미국의 원칙을 거스르지 않을 때만 유지되고 미국에 반대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보수 정객인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자유민주당 총재는 미국의 대 테러전을 적극 지원한 결과 미군이 러시아의 턱밑인 중앙아시아에 주둔하게 된 데 대해 “왼뺨을 맞고 오른뺨까지 대주는 격”이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기존 외교정책을 변함없이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실리외교 원칙’은 2기 정부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정 간섭은 거부=푸틴 대통령이 서방에 대해 예외적으로 단호한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이번 러시아 대선에 대해 미국에서는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눈에 있는 통나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먼지는 잘 보는 사람이 있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며 맞받아쳤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이해 못할 일이 많았는데 먼저 자신의 선거제도부터 완전하게 만드는 데나 관심을 가지라”고 꼬집기도 했다.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연말 미국 대선에서 ‘인권외교’를 중시하는 민주당이 승리하면 체첸사태와 러시아의 민주화를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내정에 대한 서방의 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미리 보여준 셈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對 한반도 정책…南北과 균형외교▼
“2기 푸틴 정부에서도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푸틴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의 핵심은 남북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외교’.
발레리 데니소프 모스크바국제관계대 교수(전 북한 주재 대사)는 “푸틴 대통령이 전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친(親)한 편중 정책을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3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소원했던 북-러 관계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 외교력을 발휘할 ‘수단’이 약하기 때문. 이 때문에 푸틴 정부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다자적 접근방식을 지지한다. 6자회담 성사를 위해 노력했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핵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그래야 철도 연결, 시베리아와 사할린의 에너지 개발 등 러시아의 국익이 걸린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미국, 유럽연합(EU)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바실리 미헤예프 극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는 유럽 국가면서도 아시아 국가’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동북아지역은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있다”고 분석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 2기푸틴號가 풀어야 할 주요 국제 현안 | |
| 현안 | 러시아의 전략 |
| WTO 가입 | 당초 목표인 2005년 중 가입 어려워도 임기 중 가입 완료 |
| 교토 협약 | EU와의 협상 통해 완화된 조건으로 비준 |
| 동유럽 국가의 EU 및 NATO 가입 | 가입 자체는 막을 수 없어도 신규 군사력 배치는 저지. 러시아 국민의 무비자 통과 관철 |
| CIS 관계 |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 확대 저지. CIS 결속 강화 |
| 다자외교 | 유엔의 역할 강화 |
| 대미 관계 | 인권문제 체첸사태 등 미국의 내정간섭 배제. 미국 일방주의에 국제 질서 다극화 논리로 대응 |
| 북한 핵 문제 | 다자 해결 구도에 적극 참여. 북한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러 극동지역 발전과 연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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