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MK택시 창립자 유봉식씨

  • 입력 2004년 2월 17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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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에 시달리는 일본에서 매년 흑자 기록을 이어가는 MK택시 창립자 유봉식 회장. 3년 전부터 금융업에 진출한 그는 이 분야에서도 ‘MK식 친절경영’을 구현하고 있다.  -오사카=박원재특파원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일본에서 매년 흑자 기록을 이어가는 MK택시 창립자 유봉식 회장. 3년 전부터 금융업에 진출한 그는 이 분야에서도 ‘MK식 친절경영’을 구현하고 있다. -오사카=박원재특파원
일본 신오사카역 앞 택시승차장. 순서가 되어 택시를 타려 하자 회색제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운전사가 황급히 내려 인사한 뒤 뒷문을 열어준다. 요금표에는 ‘타사보다 10% 싸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일본에서 가장 싸고 친절한 택시’로 명성이 높은 MK택시다.

MK택시 창립자인 유봉식(兪奉植·76) 회장에게 요금을 낮추고도 이익이 나는지 물었다.

“운송업이나 제조업 모두 사업의 원리는 똑같습니다. 좋은 물건을 싸고 친절하게 팔면 사람이 몰립니다. 손님이 많이 찾는데 이익이 안 날 이유가 없지요.”

그는 “어떤 업종이든 경영의 기본은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라며 “신용과 친절로 회사를 운영하니 아무리 불경기가 심해도 춥지 않더라”고 말했다. 유 회장은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교포 기업인’으로 꼽히는 인물. 1943년 16세 때 빈손으로 일본에 건너간 뒤 1960년 교토(京都)에서 택시 10대로 출발해 MK를 일본 굴지의 택시회사로 키웠다. 현재 MK택시는 교토(1200대), 도쿄(東京·250대), 오사카(大阪·110대), 고베(神戶·70대), 나고야(名古屋·60대) 등 주로 대도시에서 운행 중이다.

운전사의 제복은 일본의 유명디자이너인 모리 하나에(森英惠)의 작품. 요금은 타사보다 싸지만 직원 봉급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택시업계가 장기불황으로 고전하고 있어도 MK는 매년 흑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불황을 겪으면서 브랜드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MK택시의 서비스에 반해 웬만큼 바쁘지 않으면 예약을 해서라도 MK를 타려는 단골이 늘었습니다. 요금을 낮추니 승차율이 더 높아지고, 그래서 생기는 이익으로 요금 추가 인하가 가능해지고…. 이런 식으로 경영이 선순환 하더군요.”

그는 “일본 경제가 흥청대던 1980년대부터 요금의 ‘거품’을 빼는 작업을 해 왔다”면서 “불황을 내다본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고객층이 탄탄해지고 회사 체질도 강해졌다”고 소개했다.

현재 유 회장의 공식 직함은 ‘긴키(近畿)산업신용조합’ 회장. 택시회사 경영은 세 아들에게 맡겼다. 3년 전 교토의 한 신용조합을 사들인 뒤 교포계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도산하자 2002년 3곳을 추가로 인수했다. 일본의 교포계 금융기관 중 가장 큰 규모로 오사카 교토 등 간사이(關西) 지방에서 교포기업들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많이 좋아졌지만 교포 중소기업이 일본 은행과 거래하는 데는 여전히 제약이 많습니다. 금융업으로 교포 경제가 되살아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제 마지막 사명이지요.”

그는 직원들에게 대출고객은 돈이 아쉬워 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써서 은행에 이익을 주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MK식 친절경영’의 효력 때문인지 지난해 3월(2002회계연도) 결산에서 긴키산업신용조합은 41억엔(약 410억원)의 세후 순이익을 냈고 올해는 순이익이 50억엔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말 오사카의 생활형편이 어려운 신체장애인들에게 생업자금 10만엔씩 무담보 무이자로 융자해준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신용조합이 본 궤도에 올랐으니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였죠. 솔직히 절반 정도는 떼일 각오도 했어요.”

하지만 정작 대출건수는 3건에 불과했던 반면 몸이 불편한 전주(錢主)들이 ‘장애인과 아픔을 함께하는 금융기관’이라며 앞 다퉈 돈을 맡겨 수신액이 10억엔이나 늘었다. 유 회장은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교훈을 나이 칠십이 넘어 또 한번 배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유 회장은 올 초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평생의 영예”라고 고마워하면서도 수상소감을 묻자 조국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물고기가 죽을 때 머리부터 썩듯이 기업이나 사회도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사장이 일하기 싫어하고 폼 나는 일에만 신경 쓰면 그 회사는 망합니다. 근로자를 탓하기에 앞서 경영진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지요.” 이런 그는 “일제 통치를 겪어서인지 자위대가 해외로 진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잠이 안 올 정도로 걱정되는데 한국에선 너무 둔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사카=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유회장은

△1928년 경남 남해생

△1943년 빈손으로 도일(渡日)

△1951년 리쓰메이칸(立命館)대 법학부 중퇴

△1960년 교토에서 차량 10대로

‘미나미택시’ 설립

△1977년 회사명을 ‘MK택시’로 변경

△1991년 교토승용자동차협회 회장

△1995년 MK그룹 회장 퇴임

△1997년 일가(一家)상 수상

△2001년 긴키산업신용조합 회장

△2004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오사카=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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