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재건’싸고 국제사회 양분

입력 2003-12-12 19:06수정 2009-09-28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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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대가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자는 태도가 이런 것인가.”(유럽연합·EU)

186억달러(약 22조3000억원)에 달하는 이라크 재건사업 입찰에 프랑스 독일 러시아 캐나다 등 반전국가들을 제외시킨다는 9일 미 국방부의 발표를 놓고 법리 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한술 더 떠 11일 반전국가 정상들에게 ‘이라크가 (전쟁 전) 진 빚을 깎아 달라’고 공식 요청해 이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당초 이날 열릴 예정이던 이라크 재건사업 1차 입찰회의는 19일로 연기됐다. 하지만 미국이 양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인가=WTO 비회원국인 러시아를 제외하고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은 모두 정보조달의 투명성과 국내외 차별을 금지한 WTO 정보조달협정을 맺고 있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반전국가 입찰배제 방침을 밝히면서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란 배경 설명을 곁들였다. 국방부의 조달행위도 WTO 규정을 적용받지만 ‘국가안위’가 위태로울 경우 예외(협정 23조)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EU는 이에 따라 입찰품목이 미국 안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구체적 입찰정보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아란차 곤살레스 EU 통상위 대변인은 “군납 양말이 미 안보에 어떤 위해를 가하는지 설명을 들어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미 무역대표부는 “발주체인 ‘연합군임시기구(CPA)’는 정부조달협정 적용대상이 아니다”며 “안보조항을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관행은 미국편이지만…=이라크전쟁의 부당성을 줄기차게 지적했던 영국 BBC방송은 국제법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국제관행에 따를 때 유럽측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건비용 186억달러의 재원이 전적으로 미국 납세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만큼 미국이 입찰조건을 정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실제로 선진 각국은 개도국에 자금지원을 할 때 ‘자국기업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조건을 붙이고 있다.

문제는 이번 ‘입찰전쟁’이 향후 이라크 재건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지난달 스페인에서 열린 이라크 공여국 회의에서 미국 등 각국은 222억달러의 무상공여와 최대 133억달러의 차관을 약속했다. 이 중 미국이 내기로 한 186억달러의 입찰조건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해버리면 국제사회가 이라크 무상지원에 소극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

이라크는 또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19개국 ‘파리클럽’에 400억달러, 기타 아랍 아시아권에 약 800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빌려 쓴 이 채무를 덜어주는 협상이 성탄절 직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전망.

부시 대통령은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을 이라크 부채탕감을 위한 특사로 임명해 15일부터 설득작업에 나설 방침이지만 반전국가들이 격앙돼 있어 부채탕감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민주당은 물론 ‘신보수주의 싱크탱크’인 위클리 스탠더드지조차 국방부 결정을 번복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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