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이야기]베이징/“쓰러지는 淸의 운명 어찌하오리까”

입력 2003-12-11 16:58수정 2009-10-1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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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훙장 '지금 어려움을 감당할수가 없습니다. 중국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비스마르크(오른쪽)'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정치가는 자신감을 잃으면 안됩니다'
청조 말기 북양대신 리훙장(사진 위 왼쪽)은 청일전쟁 패배 등으로 일본 등과 잇단 굴욕 조약을 맺은 뒤 선진무기를 도입하기 위해 1896년 유럽을 방문했다. 그는 이때 독일 통일을 일궈낸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위 오른쪽)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아래는 청일전쟁 당시의 사진.동아일보 자료사진

중국 청조 말기 양무파(洋務派·서양문물을 도입해 국력을 키우자는 파벌)의 수령 리훙장(李鴻章·1823∼1901)과 독일 통일의 위업을 이뤄낸 프러시아의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

19세기말 동서양을 대표했던 이 두 거목의 짧지만 의미 있는 인연은 세상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청조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였던 1896년 6월 리훙장은 절절한 심정으로 비스마르크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최근 독일 비스마르크 기념관이 당시 두 사람의 면담 기록을 처음으로 공개해 중국에서 화제다. 비록 단 한차례의 만남에 그쳤지만 이들의 대화 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우국 충정, 개인적 고뇌 등이 진솔하게 담겨져 있었다.

○기울어가는 청조

81세의 비스마르크는 눈부신 업적에도 불구하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눈 밖에 나 고향인 함부르크 근교 프리드리히슈르에서 6년째 쓸쓸한 만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 해 3월 73세의 ‘북양대신(北洋大臣)’ 리훙장은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고 ‘중-러 밀약’을 체결하기 위해서였다. 밀약은 러시아 군함의 중국 항구 입항을 허용하고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성의 철도 부설권을 러시아에 내주는 내용이었다.

청일전쟁 패배 등으로 일본, 서방국가들과 잇단 굴욕 조약을 맺어야 했던 비운의 정치가 리훙장은 분루를 삼키며 곧바로 선진무기를 도입하기 위해 유럽 최강의 국가 독일을 찾았다. 그리고 곧바로 비스마르크에게 면담을 희망하는 편지를 보냈다.

리훙장은 6월 25일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슈르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빌헬름 1세는 독일 제국을 건설한 비스마르크의 공을 기려 그의 고향 장원(莊園)까지 연결되는 사설 철도를 놓아주었다. 현 비스마르크 기념관은 장원에 있던 철도역을 개조한 것.

리훙장이 장원에 도착했을 때 비스마르크는 빌헬름 1세가 하사한 군복에 군도(軍刀), 철십자 훈장을 패용하고 문 앞까지 나와 최고의 예로 그를 맞았다.

○ 개혁에 대한 조언

“오래 전부터 각하의 대명(大名)을 들어왔는데 이렇게 뵙게 됐습니다.”(리)

“저도 위대한 공훈을 세운 총독을 초대할 수 있게 돼 대단히 기쁩니다.”(비스마르크)

인사말이 끝나자 리훙장은 마음속에 담은 말을 꺼냈다.

“중국의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정부와 국가 모두 저에게 곤란과 장애를 만들고 있습니다.”(리)

“최고층(황제)이 당신의 편에 서 있다면 모든 일을 과감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힘이 없습니다. 어떤 신하든 통치자의 뜻을 거스르기 어렵습니다.”(비스마르크)

“황제가 줄곧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면 어떻게 합니까. 매일 골치 아픈 일들을 만들어 신하가 일을 못 하게 합니다.”(리·당시 국정을 전횡했던 서태후를 지칭한 것으로 보임)

“내가 재상일 때도 똑같은 상황을 늘 겪었습니다. 어떤 때는 여자로부터….”(비스마르크)

“하지만 각하는 강철 같은 성격을 갖고 계신데 잘 해결하시지 않았겠습니까?”(리)

“저는 귀부인들에게 늘 예의를 갖췄습니다. (잠시 말을 끊고) 어떻게 하면 위의 뜻을 아래로 관철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군대는 결정하면 따릅니다. 군대는 수의 많음이 아니라 훈련이 중요하지요.”(비스마르크)

“저희는 훈련된 군대가 부족합니다. 태평천국의 난 등을 거치면서 30년 동안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프러시아 교관을 초빙해 훈련된 군대를 만들고 싶습니다.”(리)

○ 정치가는 자신감이 미덕

헤어질 시간이 되었지만 리훙장은 아쉬움에 발길을 떼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나는 이미 지금 겪는 어려움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하소연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라”며 “겸손은 훌륭한 미덕이지만 정치가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따끔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를 응시한 채 말을 못했다. 마침내 리훙장은 “90세 생신 때 다시 와서 축하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열차에 올랐다.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비스마르크는 거수경례를 했고, 리훙장은 두 손을 맞잡아 흔들며 답례했다.

이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비스마르크는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을 떠났고, 리훙장은 조국을 다시 일으키는 데 실패했다.

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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