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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2월 1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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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티크리트에서 피살된 두 한국인은 모두 국내의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돈을 벌러 간 평범한 40대, 60대 가장이었다.
이들의 비보가 전해진 1일 유가족들은 피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넋을 잃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특히 유가족들은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 ▼관련기사▼ |
| -"추가파병 전면 재검토해야" |
▽사망자 김만수씨 집=“대사관에 신고가 안 돼 몇 명이 갔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김만수씨(46·대전 서구 삼천동)의 부인 김태연씨(43)와 영진양(18·고3년) 등 쌍둥이 딸은 고인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통보받지 못한 채 집에서 하루 종일 애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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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은 이날 아침부터 아파트 문을 굳게 닫은 채 취재를 한동안 거부하다 오후 5시경에야 기자들을 집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곧이어 부인 김씨는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이번이 마지막 출장이라고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딸 영진양은 출국 전날 아버지와 찍은 휴대전화 사진을 보며 “아빠가 우리를 대학에 보내야 한다며 떠나셨다”면서 울먹였다.
▽사망자 곽경해씨 집=이날 오후 2시경 대전 유성구 방동 곽경해씨(60) 집에서도 유가족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곽씨의 부인 임귀단씨(56)는 “남편이 전쟁하러 가는 것 아니고 일하러 가는데 무슨 일 있겠느냐며 걱정 말라고 했다. 이제 살 만하다 싶은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유가족은 행여 충격을 받을까 봐 중구 중촌동 곽씨의 동생(45) 집에 머물고 있는 어머니(81)에게는 아들의 사망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곽씨는 20세 때부터 전기기술을 익힌 뒤 지금까지 송전탑 세우는 일에만 매달려 별명이 ‘송전탑의 날다람쥐’다. 공사를 도급받거나 전기회사의 팀장급으로 일하면서 2남 1녀를 공무원과 회사원으로 키웠다.
▽부상자 가족=당초 중태로 알려졌으나 오른쪽 다리 관통상을 입어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 이상원씨(42)의 부인 문옥경씨(38·대전 대덕구 신탄진동)와 경상을 입은 임재석(林在碩·32)씨의 아내 노예순(魯禮順·31·전남 목포시 용해동)씨는 이라크에 있는 남편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전=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목포=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사원피습 '오무전기'▼
이라크 파견 근로자가 피살당한 ㈜오무전기(대표 서해찬·57)의 서울 구로구 구로1동 본사 사무실은 1일 하루 종일 현지상황을 확인하려는 직원들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회사측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오후 3시45분쯤 이라크 현지에서 전화가 왔는데 부상한 이상원씨와 임재석씨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며 이씨는 다리 관통, 임씨는 경상을 입었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현지에 남은 한국인 직원 전원을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호텔로 피신시키고 공사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당초 이라크 현지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해찬 사장은 국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 사장은 이날 외교통상부를 방문하기 전 기자들에게 “정부가 이라크 파견 직원들의 명단을 제출해 달라고 연락했다고 했지만 연락을 받은 바도 없고 절차도 몰랐다”고 말했다.
서 사장은 “이라크는 정부가 없는 상황인 데다 요르단을 통해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비자가 필요하지 않았다”며 “외교부 신고 여부는 물론 이라크 현지에 대사관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피살 소식이 알려진 이날 오전 1시경부터 이 회사 직원들은 사무실에 출근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강의수 상무 등 직원 3명은 하루 종일 문을 잠그고 사무실에서 현지 상황을 파악하며 파견 근로자 가족에게 전화 연락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강 상무는 “자정쯤 TV 방송을 보고 본사로 와서 오전 1시경 ‘4명이 피격됐다’는 현지 전화를 받았다”며 “우리도 이라크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언론보도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유가족과 부상자 가족들은 현지상황을 알기 위해 회사를 찾았으나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회사측은 원발주자인 워싱턴인터내셔널그룹(WGI)의 보상과는 별도로 비슷한 피해를 본 국내 피해자 보상 기준에 준해 보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1997년 설립된 발전기 전동기 재생산 및 송배전 공사 전문 업체. 정식 직원은 79명이며 이라크 계약직 64명을 포함해 68명의 계약직 직원이 있다. 지난해 매출은 19억원.
이번 이라크 공사가 첫 해외사업이며 사업규모도 2000만달러(약 240억원)로 연 매출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필리핀 실로사의 제안을 받아 10월 말 바그다드와 티크리트를 잇는 송전탑 46km 구간의 복구 하청공사를 맡기로 했다. 12월 25일까지 송전시설을 복구해 달라는 미군측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정식 계약을 하기 전인 11월 11일부터 공사에 들어갔으며, 선발대가 10월 3일부터 공사 전까지 이라크 현지 상태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美社와 정식계약 안맺어 피해보상여부 아직 몰라▼
이라크에서 희생된 ㈜오무전기 직원들은 보상받을 길이 있을까.
이 회사 강의수 상무(50)는 “원 발주자인 워싱턴그룹인터내셔널(WGI)의 보상규정에 의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 중”이라면서도 “아직 WGI와 정식으로 계약을 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것을 말해줄 수 없다”고 1일 말했다.
공사 주체인 WGI와 계약을 하기 전에 직원부터 파견한 것이다.
강 상무는 “산재보험에는 가입돼 있지만 외국에서 일하는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선례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와 노동부 등도 산재보험과 근로자재해보상을 적용받을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배상과도 거리가 멀다.
그러나 오무전기측은 “일반적으로 보험금으로는 보상을 충분히 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 별도의 보상금을 준비한다”며 “보험금에 의한 보상과는 별도로 유가족에게 최대한 성의를 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라크 파견 직원들의 일당은 30만원이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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