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윤/사이버테러와 ‘오노 不參’

  • 입력 2003년 11월 24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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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전주 쇼트트랙월드컵대회에서 할리우드 액션의 주인공인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를 볼 수 없게 됐다.

미국선수단은 대표팀 전원의 불참을 통보하면서 비싼 항공료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상은 오노에 대한 신변위협 때문에 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AP와 AFP 등 통신사들은 “오노가 e메일로 살해 협박까지 받자 미국 대표팀이 출전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오노는 지난해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500m 결승에서 김동성이 진로를 방해했다는 할리우드 액션을 취해 금메달을 앗아간 선수다. 당시 이 사건은 한국선수단 폐회식 불참 문제로까지 비화됐고 국내에서도 ‘안티 오노’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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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노가 전주월드컵에 출전한다고 하자 국내 네티즌이 다시 들끓었다. 사이버 공간에는 ‘오노 한국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 ‘안티 오노 대원 모집’ 등의 섬뜩한 글이 수없이 올랐다.

오노 자신도 한국 네티즌들에게서 협박성 e메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본인 외에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미국빙상연맹 홈페이지에 ‘사이버테러는 다른 모든 테러들처럼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며 ‘범죄자들이 체포되지 않는 이상 월드컵대회에 불참할 수밖에 없다’는 성명까지 발표한 것을 보면 그 수위를 짐작할 만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당시 김동성의 실격을 판정한 사람은 심판이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시속 60km 이상으로 달리는 쇼트트랙 경기에서 순간적인 판단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대해 미국 팬들은 아직까지 정당한 제스처였다고 주장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김동성이 금메달을 빼앗겼다면 정작 공격을 받아야 할 대상은 오심을 한 심판이다.

또 한 가지, 오노에게 ‘복수’를 원한다면 그와 겨뤄 이겼어야 했다. 국내 팬들이 보는 앞에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벌여 오노를 꺾는다면 그보다 더 통쾌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김동성은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지만 오노를 능가하는 선수는 또 있다. 국가대표팀의 이승재와 안현수도 최근 캐나다와 미국에서 오노를 누르고 우승했다.

한국은 지금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외국 선수가 한국 네티즌의 협박이 무서워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일뿐더러 유치활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미국 네티즌은 오노 팬사이트(www.ohnozone.net)에 올린 ‘한국의 증오자들에게’라는 글에서 ‘미국 쇼트트랙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훈련하고 있으며 그들은 여러분의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썼다.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재윤 스포츠레저부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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