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p에 목매는 한국 재무장관 답답" 루빈 회고록

  • 입력 2003년 11월 11일 12시 48분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는 신조 아래 냉정한 확률적 사고를 적용해 미국 역사상 최장기 호황을 이끌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로버트 루빈 전미 재무장관(65)이 회고록 `불확실한 세계에서:월가에서 워싱턴까지 어려운 선택들(In an Uncertain World:Tough Choices from Wall Street to Washington)'을 냈다.

18일 발매될 이 회고록에서 루빈 전 재무장관은 26년간 몸담았던 월스트리트 생활과 백악관 경제보좌관 및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클린턴 행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이 됐던 이른바 '루비노믹스(Rubinomics)'를 시행하게 된 사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루빈의 회고록에서 한국인의 관심을 우선 끄는 대목은 한국이 위환위기를 벗어난 직후 한국 경제 관료와 관련된 부분이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0.25%p에 목매는 한국 재경부장관이 매우 답답했다'고 했다.

외환위기를 갓 벗어난 한국이 99년 뉴욕에서 첫 기채(起債)하면서 "이자율이 0.25% 높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데 대해 격분했다고 그는 기록했다. 그는 "0.25%P를 더 주더라도 시장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망설이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발췌해 보도한 회고록(2탄)에 따르면 루빈이 1993년 국가경제위원회(NEC)를 이끄는 백악관 경제보좌관으로 임명된 직후 가장 심혈을 쏟은 부분은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정책 결정과정을 조직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위해 과거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면밀히 분석했으며 대통령이 어려운 결정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정책 결정과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93년 1월7일 경제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경제보좌관들과의 회의에서 클린턴이 재정적자 축소의 필요성을 역설한 자신의 건의를 수용, 후일 루비노믹스로 불리게 된 균형예산 정책의 뿌리가 내려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재무장관은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말의 내용과 말하는 방식이 신중하고 절제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시장에 개입할 능력을 갖고 있는 재무장관의 발언은 시장에서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면서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에 충격을 주면 신뢰를 잃게 된다고 루빈은 지적했다.

그는 경제의 기초여건이 장기적으로 환율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율에 영향을 주려고 시도하는 것 보다는 올바른 정책을 개발해 시행하고 경제 전반의 실적을 높이는 것이 최상의 환율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루빈은 이런 냉정한 판단을 바탕으로 재무장관 취임 직후인 95년 발생한 멕시코외환위기와 이어 진행된 아시아 및 러시아 금융위기가 세계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98년 일본 엔화가 달러당 141엔까지 폭락했을 때 외환시장 개입 요구가 높았지만 엔화의 약세는 일본 경제의 취약성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시장개입을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이런 판단은 옳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회고했다.

루빈은 1936년 뉴욕에서 출생,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런던정경대(LSE)를 거쳐 예일대 법대에서 수학했다.

대학졸업 직후 변호사로 시작한 루빈은 2년 뒤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90년 회장직에 올랐다. 그는 재무장관 퇴임 후 세계 최대의 금융기업인 시티그룹의 공동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뉴욕의 공립학교에서 출발해 증권회사 최고경영자, 백악관 경제보좌관, 재무장관에 이르는 인생역정을 담은 루빈의 회고록은 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대한 직관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인간 루빈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서적 평론가들은 전하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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