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유럽독자방위’ 美와 또 마찰

  • 입력 2003년 10월 19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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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독자방위 구상으로 유럽연합(EU)과 미국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17일 폐막된 EU 정상회의에서 유럽 공동방위협력 강화 합의가 이뤄지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대체하는 기구 창설 의도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EU 의장을 맡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정상회의 직후 “EU 정상들이 만장일치로 유럽방위정책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유럽방위정책은 현재 초안 작성 작업이 진행 중인 EU 헌법의 의제 중 하나다.

지난달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3개국 정상이 독일 베를린에서 모여 유럽 방위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프랑스의 첫 여성 국방장관인 미셀레 알리오 마리는 “NATO의 역할을 하나 더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다”라고 밝혀 유럽방위정책이 NATO와 별개로 입안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EU의 유럽 방위구상은 NATO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신속대응군’을 창설한 시기와 맞물려 나왔다. NATO가 신속대응군을 발족시킴으로써 옛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한다는 NATO 출범 당시의 군사전략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게 EU측의 해석이다.

구사타프 하그런터 EU 군사위원장은 “인구 4억5000만명인 EU가 독자적 군사력이 없다는 것은 곤란하다”며 “EU 군대는 1년 내에 창설돼야 한다”고 거들었다. 1992년 유럽방위군이 창설됐지만 규모가 1000여명으로 상징적 조직에 불과하다.

미국은 EU의 이 같은 움직임을 54년 전통의 NATO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우려하는 분위기다. 니컬러스 번스 NATO 주재 미국 대사가 20일 NATO 대사 긴급회의를 갖자고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번스 대사는 “NATO는 EU 헌법 초안에 어떤 내용의 방위정책이 들어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EU의 한 고위 외교관도 “미국은 프랑스가 영국 독일과 함께 EU의 군사력을 강화해 결국 NATO에서 떨어져 나갈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베노이 다보비유 NATO 주재 프랑스 대사는 “NATO는 EU 회원국들이 동의하기 이전에는 내부 문제들에 관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번스 대사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EU가 현 단계에서 방위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립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기색은 역력하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NATO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어떤 유럽 방위구상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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