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3년 애그뉴 美부통령 사임

  • 입력 2003년 10월 9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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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10일. 미국의 37대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가 탈세혐의로 기소위기에 몰리자 도중하차했다. 현직 부통령으로는 첫 불명예퇴진이었다.

애그뉴 부통령은 1970년 8월 “5년 내에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폭탄발언을 해 박정희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장본인. 그는 최근 들어 국내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재임시 화려한 ‘언론과의 전쟁’ 경력 때문이다.

원래 미국에서 부통령이란 소리없는 자리다. 1910년대에 부통령을 연임한 토머스 마셜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남겼다. “옛날에 한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어부가 돼 바다로 나갔고, 동생은 부통령이 됐다. 그 후 아무도 그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던 애그뉴는 반대파들을 참아내지 못했다.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전후해 사사건건 언론과 충돌해온 닉슨 행정부의 ‘거친 입’을 자처했다.

“언론사의 간부 몇 사람이 어떻게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재단하고 공격할 수 있는가… 언론이 면책특권을 누리던 시대는 끝났다… 언론도 보도내용과 입장을 해명해야 한다.” 저 악명 높은 ‘애그뉴 독트린’이다.

그는 “부통령인 나는 국민들이 뽑았지만 너희들은 누가 뽑았느냐”며 기자들을 다그쳤고 반전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에게는 “일생에 생산적인 일은 단 한번도 안 해본 무리”라고 몰아세웠다.

그는 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닉슨은 순진하게도 나를 늑대들에게 던짐으로써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백악관을 떠난 뒤 20년간 닉슨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헬렌 토머스는 이렇게 회고했다. “닉슨은 ‘롤러코스터’ 같은 대통령이었으며 애그뉴는 고위공직자 가운데 가장 불량한 도덕적 나침반을 갖고 있었다. 미 정치체제에 이토록 깊은 상처를 남긴 두 사람이 어떻게 한 행정부에 몸을 담게 됐는지, 그저 경악할 따름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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