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앙亞서 미군을 견제하라”

  • 입력 2003년 9월 24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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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 13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군사기지를 만들기로 했다. 9·11 사태 이후 대테러전을 명분으로 이 지역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2001년 러시아의 ‘코앞’인 중앙아시아 지역에 사상 처음으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경제지원 등을 내세워 역내 국가들의 탈(脫)러시아를 부추겨 왔다.

▽해외 군사기지 신설=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아스카르 아카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23일 “10월 중 수도 비슈케크 인근 칸트 공항에 러시아 공군기지를 설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22일 아카예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군 주둔을 허용하는 문서에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군이 해외에 기지를 설치하는 것은 1990년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 해체 후 재정난을 겪자 해외 군사기지를 잇달아 폐쇄해 왔다.

칸트 기지는 특히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주둔 중인 마나스 공군기지와 불과 30km 떨어져 있어 중앙아시아에서 미군과 러시아군이 지척에서 대치하는 형국이 됐다. 미 공군은 마나스 기지를 이용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출격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칸트 기지에 중앙아시아는 물론 중동지역까지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비행관제시설을 갖추고 최신예 SU-27전투기와 SU-25폭격기를 배치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은 타지키스탄에 주둔하는 1개 기계화사단이 전부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 지역은 러시아에 매우 중요하다”며 기지 신설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미-러 군의 대치 상황에 대해서는 “각자의 임무가 다르다”고만 언급했다.

▽중국 등 주변국과 공동전선 구축=단독으로 미국과 맞서기 어렵다고 판단한 러시아는 주변국과의 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이 결성한 상하이협력기구(SCO)는 2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총리 회담을 열고 안보 및 경제협력을 강화키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특히 이들 국가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집단안보조약 가입 6개국도 중앙아시아 지역에 신속배치군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들 6개국은 5월 정상회담을 갖고 내년까지 △연합군 사령부 창설 △각국 부대를 군사동맹에 맞게 재조직 △공동 군사훈련 실시 △러시아제 무기 도입시 우대 혜택 등에 합의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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