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석유산업外 전면개방” 과도정부 파격개혁안 공표

  • 입력 2003년 9월 22일 18시 12분


미국의 통제를 받는 이라크 과도정부가 석유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을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파격적인 경제개혁안을 21일 공표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13년간 계속된 유엔 경제제재가 올해 5월 풀린 데 이어 이번 개혁안으로 이라크가 세계경제에 편입될 발판이 마련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갑자기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데 따르는 장애가 만만치 않은데다 이라크의 경제주권이 외국인들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라크 경제개혁안=이라크 과도정부의 카멜 알 가일라니 재무장관은 21일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의 연차총회에서 이 경제개혁안을 공개했다. 국영기업 민영화에 외국자본을 대폭 유치한다는 것이 골자.

개혁안에 따르면 외국기업은 이라크 기업을 사들여 경영을 지배하거나 이라크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할 수 있다.

외국 은행에도 문을 연다. 5년 안에 6개의 외국은행이 이라크 은행 지분을 100%까지 사들일 수 있고, 5년 후에는 은행업 진출에 대한 모든 제한이 없어진다. 외국인들은 이라크 토지를 살 수는 없지만 최대 40년간 빌릴 수 있다.

이런 개방안은 외자 유치에 적극적인 중동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파격적이다.

그러나 경제의 핵심인 석유산업은 국가가 계속 통제한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석유시장이 호황이었던 1980년 이라크의 국내총생산(GDP)은 476억달러였다. 하지만 8년간의 이란-이라크전쟁과 1990년 쿠웨이트 침공 후 유엔 경제제재로 이라크 경제는 사실상 붕괴됐다. 2001년 추정 GDP는 279억달러.

사담 후세인 정권은 사회주의 국가처럼 계획경제를 고수했다. 석유 등 국영 부문이 GDP의 75%를 차지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도 민간자본에 부분적으로만 개방한 사실상의 국영기업이었다.

올 5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경제제재를 해제한 뒤 이라크는 6월 원유수출을 재개하는 등 시장경제에 재편입됐다. 올해 말 바그다드에서 열릴 국제 무역박람회에는 서방기업이 다수 참가할 예정.

▽이라크인을 위한 시장경제, 성공할까=이라크 기업인들은 경제개혁안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해냈다. 이라크 기업인협회 회원인 와디 수랍은 “이라크 기업은 (해외) 민간기업과 경쟁할 능력이 없다”며 “이라크 기업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도 “이라크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려면 어려움이 따를 것이며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처럼 이라크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이식해 중동의 교두보로 삼으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외국인을 배제한 채 일본정부 주도로 재건사업을 편 것과 달리 이라크에서는 민영화와 외국인 투자 끌어들이기에 기반한 이라크의 시장경제 도입이 자칫 외국 기업들의를 통해 경제개혁을 하려 하기 때문에 ‘전리품 나눠먹기식’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처럼 이라크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이식해 중동의 교두보로 삼으려 하지만 이라크의 상황은 일본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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