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오하이오 송전선 단절로 시작”

  • 입력 2003년 8월 17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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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슈퍼 파워이면서 제3세계 수준의 전력망을 갖고 있다.”(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미국이 사상 최악의 후진국형 정전사태로 큰 수모를 당했다. 미국은 1965년 대규모 정전사태에서 배운 ‘정전 지역을 최소화한다’는 교훈을 이번에도 실천하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사태를 파악한 후 “나는 이것을 긴급경고로 여긴다”면서 “(이번 사태는) 전력망 현대화의 필요성을 지적해줬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따른 손실액은 수십억∼수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들은 추정하고 있다.

▽사고원인=미국 8개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 20만km²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5000만명이 피해를 본 이번 사태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고압송전선 이상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원인을 조사 중인 북미전기신뢰성위원회(NERC) 조사 결과 14일 오후 3시6분 클리블랜드 서쪽의 345KV 고압송전선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단절된 것이 이번 정전사태의 시작이었다. 첫 사고가 발생한 지 26분 뒤 주변 송전선도 과부하 때문에 단절됐다.

이어 4시6분 같은 이유로 3개의 송전선이 단절됐고 수분 뒤 미 동부와 캐나다 일대 전기의 전압이 오르내리고 전류의 흐름에 이상이 생겼다. 많은 송전선이 단절되면서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10여초 만에 다른 발전소까지 기능이 마비돼 4시11분부터 정전사태가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력 전문가들은 중서부의 전력망이 지나치게 부하가 많이 걸리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오하이오주는 이런 경고를 집중적으로 받았으나 방치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7일 지적했다.

오하이오주 일부에서는 13일 오후 3시부터 평소보다 훨씬 큰 폭으로 전압이 오르내리는 이상현상이 체크되었는데도 무시됐다. 6월 중순부터 한 달간 전압이 정상치보다 높아지는 상황이 1분 이상 지속되는 일이 수시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후대책=리처드슨 전 장관은 “미국 전기시스템의 대부분은 50∼60년 된 것”이라며 “그러나 이것을 고치자는 이야기는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부와 여론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이번과 같은 대형사고를 피하려면 송전선, 송전타워, 변압기를 교체해야 하며 여기엔 560억달러(약 64조원)가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래야만 늘어나는 컴퓨터와 주변기기들, 대형화하는 주택, 대기업의 전기수요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라 미드 바라우넬 연방에너지규제위원장은 NBC TV에 출연해 “사고 원인과 관계없이 송전망은 현재 경제를 지탱하지 못하므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규모 민간 전기공급업체들은 경기침체에다 1990년대 말 정부규제 해제에 따른 가격경쟁 때문에 이만한 투자자금을 마련할 능력이 없는 형편. 게다가 환경보호주의자들과 땅 주인들의 반대로 송전설비를 세우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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