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덫에 걸려들었다”…美 공화당 원내총무 로트 사임 파문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8시 00분


미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직을 사임한 트렌트 로트 의원이 22일 손녀를 안고 부인 트리셔와 함께 교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패스커굴라(미시시피)AP연합
미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직을 사임한 트렌트 로트 의원이 22일 손녀를 안고 부인 트리셔와 함께 교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패스커굴라(미시시피)AP연합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19일 공화당 원내총무직을 사임한 트렌트 로트 미 상원의원(미시시피)이 ‘워싱턴의 위선’에 당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트 의원은 22일 사임 표명 후 첫 공식 발언으로 “정적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으며 희생양이 됐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5일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의 100회 생일파티에서 1948년 인종격리 정책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서먼드 의원을 찬양한 발언은 새삼스러울 게 없었기 때문. 그러나 미 언론들은 그가 의정활동에서 흑인 인권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나 지난해 흑인 대법관의 인준에서 혼자 반대표를 던진 것 등과 결부시켜 분위기를 사임쪽으로 몰고 갔다.

워싱턴 포스트의 미디어 전문기자인 하워드 커츠는 22일 “그의 의정활동이나 정치적 색채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 새로운 것처럼 포장해 민주당에서 문제삼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고, 결국 대통령이 그를 ‘해임’한 것은 워싱턴의 대표적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정작 로트 의원으로부터 ‘덕담’을 들은 서먼드 의원의 인종차별주의적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비판하지 않고 있다. 인터넷 매거진 슬레이트닷컴은 “서먼드 의원에 대한 워싱턴의 오랜 거짓말은 서먼드 의원이 과거를 뉘우쳤다고 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먼드 의원은 4년 전인 98년 대선 출마 5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사과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나는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은 이처럼 인종차별주의를 사실상 묵인하거나 용인해 온 분위기. 이 때문에 로트 의원이 문제의 발언을 한 파티장에 기자들이 있었지만 기사를 쓰지 않았다. 로트 의원도 파티 후 전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플로리다주의 휴양지 키웨스트로 휴가를 떠났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에서 들고일어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해 파티 사흘 후 처음으로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하고 다른 주요 언론도 뒤를 따랐다.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은 공세로 전환할 호재를 찾고 있었고 언론들은 인종차별주의 철폐에 대한 선명한 입장을 내보이기 위해 그를 물고 넘어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처음엔 그를 보호하려 하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해임’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대선을 2년 앞두고 흑인표와 온건 백인표를 감안한 조치. 여기에다 후임에 자기 사람인 빌 프리스티 의원(테네시)을 심는 데 성공함으로써 악재를 권력강화의 빌미로 활용했다.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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