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문제’ 서방국의 해답은…이합집산

  • 입력 2002년 9월 25일 18시 03분


“이라크 문제에 대한 유럽의 입장은 무엇인가.”

뉴욕타임스가 22일자에서 낸 퀴즈. 정답은 2개였다. “아무도 모른다”와 “하나가 아니다”.

이라크 문제를 놓고 유럽이 분열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편에 서서 무기사찰에 관계없이 이라크를 침공해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있고 프랑스는 유엔 무기사찰 이후 침공 여부를 재논의해야 한다며 조건부 반대 입장을 펴고 있다. 반면 독일은 유엔이 침공을 결의해도 파병하지 않겠다는 무조건 반대 입장에서 요지부동이다.


독일에 대해서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7일 “시라크 대통령은 독일이 그와 상의 없이 이라크 침공에 대한 무조건 반대를 천명한 데 화가 나 재정난에 빠진 프랑스 소유 독일 이동전화 회사 모빌컴을 지원하자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은 프랑스의 몫이었다. 외교 격월간지 포린 폴리시의 제임스 기브니 편집장은 “슈뢰더 총리의 노선은 미국과 프랑스의 신경을 건드렸다”고 표현했다.

유럽 주요 3국의 입장 차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영국과 프랑스는 과거 세계 열강이었다는 사실을 깊이 의식하고 국제정치의 테이블에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2차대전의 전범국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출발한 독일은 ‘보통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제는 외교정책에서 ‘독일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은 미국의 충성스러운 동맹국이었던 서독시절을 거쳐 90년 통일 이후 서서히 국제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묘한 것은 2차대전 발발 당시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인류의 대재앙을 낳은 독일이 가장 평화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는 반면 당시 가장 평화적이었던 미국이 가장 호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

물론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관점에서는 독일이 국제평화의 ‘방해주의자’이며 국제적 책임을 외면하는 ‘고립주의자’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2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방장관 회의에서 독일 국방장관을 철저히 외면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부시 대통령의 판단으로는 독일 총선 중에 나온 발언들은 과도한 것이었으며 반미 감정을 야기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누구도 총선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일이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보수진영에서는 독일이 구소련에 대한 전초기지로서 가졌던 전략적 중요성을 이제는 상실했기 때문에 독일 내 주둔하고 있는 7만명의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시 행정부가 가까운 시일 안에 독일을 주요한 파트너의 명단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전했다.

슈뢰더 총리는 선거에서 이긴 독일 총리가 첫 방문국으로 프랑스를 선택하던 관례를 깨고 24일 런던을 방문, 토니 블레어 총리와 회동했다. 블레어 총리를 중간에 넣어 대미관계를 개선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회복에 앞서 독일의 독자노선은 과연 유럽이 안보문제에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뉴욕타임스는 이처럼 분열이 지속되는 한 “유럽이 대단한 곳(super place)이기는 하지만 초강국(superpower)은 아니다”고 보도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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