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 1년]<5>세계 석학들이 보는 ‘9·11’

  • 입력 2002년 9월 4일 18시 05분


9·11 테러의 배후인물로 추적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 버젓이 뉴욕 타임스를 읽고 있다. - 루리
9·11 테러의 배후인물로 추적받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 버젓이 뉴욕 타임스를 읽고 있다. - 루리
《9·11 테러는 왜 일어났고 이후 세계는, 그리고 역사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술지 ‘폴리티컬 사이언스 쿼털리’ 봄호와 ‘폴리시 리뷰’ 6, 7월호는 정상급 학자들의 논문을 통해 이 같은 물음에 답하고 있다. 코넬대의 월터 라퍼버 교수는 9·11 테러를 제1차 세계대전을 부른 사라예보 페르디난드 대공의 저격사건에 비유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제국주의적 영토확장을 통해 세계화를 추진하던 서구 열강이 충돌한 사건이라면 9·11 테러는 또 다른 형태의 세계화가 낳은 부작용이라는 것. 로버트 저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테러의 규모와 희생자가 컸을 뿐 9·11 테러가 본질적으로 전환기적인 사건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서구의 많은 언론은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로 9·11을 규정해 왔다.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예언한 ‘문명의 충돌’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역사의 종말’에서 서구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예언은 틀린 것인가. 후버연구소의 스탠리 커츠 연구원은 두 학자의 이론을 비교하면서 정책적 대안을 내놓았다.》

▼월터 라퍼버 교수▼

월터 라퍼버 교수

코넬대의 월터 라퍼버 교수는 9·11 테러가 한 세대 전에 시작된 세계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입장. 세계화는 부(富)의 불평등한 분배와 국가적 권력의 파편화 현상을 초래했고 여기에 기생하는 테러리스트 집단은 세계화 기술에 의해 제공되는 최첨단의 기법들을 이용해 미국을 공격했다는 것. 다음은 그의 논문 ‘제국과 세계화 그리고 파편화에 관한 9·11 이후의 토론’의 요약.

첫번째 세계화는 19세기 중엽에 시작돼 1차 세계대전의 대재앙으로 막을 내렸다. 두 번째 세계화는 70년대의 새로운 과학기술과 함께 시작돼 80년대 말과 90년대 미국의 승리주의(triumphalism)를 타고 번성했으며 9·11테러 때까지 계속됐다. 이 세계화는 제국주의자들에게는 다른 사회들을 지배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킴으로써 지구 주요 지역의 안정을 흔들어놨다. 여기에다 통신 능력의 향상으로 빈자들은 빈부의 격차를 뚜렷이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세계는 미국이 유일한 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오히려 다양한 수준에서 파편화의 길을 걸어왔다. 1500년대에도 유엔이 있었다면 회원국은 300개국이 넘었을 것이다. 1900년에는 30∼50개국으로 줄었을 것이나 2000년에는 190개국이 넘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냉전의 종식으로 소련이 해체되면서 많은 국가들이 새로 생겨났다. 동시에 국경이 열리면서 사람과 재화가 자유롭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냉전 종식의 이중적 이점을 간파했다. 그의 알 카에다 네트워크는 90년대 초까지 20여개 국가로 퍼졌는데 이것은 미국의 냉전 승리로 인한 파편화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냉전과 걸프전 이후 승리에 도취돼 있었다. 90년대 내내 미국은 주식시장의 붐으로 얻은 소득을 소비하면서, 경제적 성공을 국가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한 정부에 의해 운영됐고 9·11테러까지 국내적 이슈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외교는 전통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만 치중, 국가 단위에서 포착되기 어려운 테러리스트의 움직임을 간과했다. 미국은 세계화의 한 측면만 이해했고 테러리스트들은 세계화와 그에 따른 파편화의 양측면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공식적인 국가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무정형적이고 흩어져 있는 집단과의 전쟁이어서 몇십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미국이 정말 새로운 미 제국을 건설하려면, 그래서 9·11 이전의 파편화된 세계를 미국적 가치에 바탕을 둔 세계로 바꾸려면 어쩌다 한번씩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를 버리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탠리 커츠 연구원▼

스탠리 커츠 연구원

후버연구소의 스탠리 커츠 연구원은 폴리시 리뷰 6, 7월호에서 논문 ‘역사의 미래’를 통해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론’과 후쿠야마 교수의 ‘역사의 종말론’을 모두 비판하면서 미국이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다음은 논문 요약.

9·11 테러에 대한 헌팅턴 교수의 예측은 섬뜩하리 만치 정확했지만 그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다. 그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도전으로 이슬람의 폭력투쟁을 꼽으면서 이슬람의 호전성과 폭력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테러리스트를 특정 문명과 결부 지을 수 있는지, 아프가니스탄 테러리스트들의 기원은 반미(反美)가 아니라 반소(反蘇)가 아니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후쿠야마 교수는 개개인이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민주주의의 근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개인은 사회의 근본단위가 아니다. 개인은 그들이 속한 조직 및 계급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역사적으로 집단에 의한 개인의 희생이 빈번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자살폭탄테러가 좋은 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이 경제적 군사적 힘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정복당하지 않으려면 근대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형태의 불만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마 이것이 역사의 종말이 아직 오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파키스탄을 예로 들어보자. 헌팅턴 교수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이슬람과 동아시아 반미 연대의 핵심고리다. 그러나 대(對)테러전쟁에서 파키스탄은 미국의 핵심우방.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준동과 이에 따른 파키스탄 정치의 불안정성은 헌팅턴 교수의 예측 대로다. 그러나 군사적 경제적 이득 때문에 파키스탄이 서방과 협력을 강화한 것은 후쿠야마 교수의 손을 들어준다.

두 사람의 정책적 목표는 전혀 다르다.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이 해외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기를 원하고 헌팅턴 교수는 오만하고 순진한 민주주의적 제국주의의 잠재적 재앙에 대해 경고한다. 당분간 미 제국주의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대테러전쟁에서의 승리로 이슬람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한층 커질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 힘을 행사하고 있고 이라크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 정복한 이슬람영토에 민주주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까, 아니면 문명적 오만을 삼가면서 과격한 전통주의자들의 위협에 대처해야 할까. 우리는 이 두 가지 가능성 모두에 대비하면서 실험과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언제든 정책을 수정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일관성에 집착한 오만은 혼란과 분열을 초래할 것이다.

▼로버트 저비스 교수▼

로버트 저비스 교수

로버트 저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많은 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9·11 테러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게 없는 테러라고 주장하면서 9·11 테러가 오히려 국가 권력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그의 논문 ‘9·11에 대한 중간평가: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가’의 요약.

테러리즘 그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9·11 테러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더 이상 전쟁이 일상화되지 않은 시대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9·11 테러는 오히려 국가의 결정적인 역할을 보여줬다. 위기의 순간에 미국인들은 교회도, 다국적 기업도, 유엔도 아닌 정부에 의존했다. 9·11 테러의 결과 국가 권력은 보다 강력하고 커졌다.

테러를 낳은 사회적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면 테러를 뿌리뽑을 수 있다고 진보주의자들은 말하고 있지만 사실 빈곤은 테러리즘의 필요 또는 충분 조건이 아니다. 알 카에다 지도부들이나 9·11 테러범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설령 가난과 불평등, 사회적 억압이 테러리즘의 원인이라고 해도 미국이 막대한 원조를 제공해서 해결할 수는 없다. 아직도 민주주의와 성숙한 시민사회 그리고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를 낳는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구명되지 않았다.

물론 미국의 외교정책이 증오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테러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의 친 이스라엘 정책이 테러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국가수립을 지지했을 때도 테러는 일어났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히지만 만약 미군이 철수했다면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공격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알 카에다의 증오를 줄이기 위해 미국의 정책을 바꿔야 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강력한 국가는 어떤 식으로 힘을 행사한다고 해도 증오의 대상이 된다.

오히려 테러리즘은 이슬람 사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미움과 다른 문명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사람들이 왜 우리를 미워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양식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9·11 테러 이전에 형성된 정치적 어젠다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9·11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거나 “세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세계가 테러리즘에 맞서 하나가 될 것”이라는 주장만큼 신빙성이 없다. 미국은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걸을 것이다.

정리〓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정리〓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