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 1년]<3>이슬람은 말한다

  • 입력 2002년 8월 28일 18시 06분


성지순례 인파 - 동아일보 자료사진
성지순례 인파 - 동아일보 자료사진
가이드 겸 통역 아하마드 아사자이(25)가 갑자기 “저기 봐, 저기”하고 외쳤다. 16일 기자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거리를 승용차로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쪽에는 색안경에 방탄복을 입고 소총을 든 백인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들을 향해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아이 에스 에이 에프(ISAF·국제치안유지군)”라며 빙긋 웃었다.

‘ISAF’ 마크가 찍힌 지프가 지나가면 거리의 아이들은 “와∼”하고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어떤 사람은 카메라를 허리에 찬 기자를 보자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며 “ISAF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9·11 테러와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을 바라보는 아프간 사람들의 반응은 단순하지 않았다. 카불의 시로호 오마르 동물원장(48)은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의 심장부에 대규모 테러를 가할 능력이 있다고 보느냐”고 반문하면서 미국의 아프간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만데이 시장에서 만난 다른 시민도 “결국 (미국이)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영향력을 넓히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방콕에서 이슬라마바드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만난 파키스탄 출신의 무역업자 사보르 라덴(28). 그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은 슬픈 일”이라며 “그러나 테러의 원인은 강경 일변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펼치는 미국에도 있다”고 말했다.

가죽을 비롯한 잡화를 파는 그는 “고층건물에 둘러싸인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위성방송 안테나가 곳곳에 설치된 걸프 지역 등 세계 도처의 이슬람교도들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는 정서적인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파키스탄에서도 지도층과는 달리 일반 주민들은 미국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는 것. 실제 파키스탄의 이슬람교도 수만 명은 미국의 아프간 공격을 전후해 미국과의 지하드(聖戰)에 참가한다며 아프간으로 떠났었다.

카불에서도 빈 라덴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에는 공적(公敵) 1호지만 이슬라마바드나 카불의 시장 한 쪽에는 빈 라덴의 모습과 쌍둥이 빌딩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이 그려진 쿠션 등이 팔리고 있었다.

이슬람권의 미국과 서구에 대한 적개심의 뿌리는 깊다. 이란의 인터넷신문 이란엑스퍼트지는 5월 11일 한 칼럼에서 “9·11 테러는 서구가 이슬람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 편견은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 십자군 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십자군 원정은 서유럽의 기독교 신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빼앗기 위해 8회에 걸쳐 이뤄졌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9·11 직후 국제사회에 대해 “테러 근절을 위해 ‘십자군 전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 이슬람권의 반발을 불렀다. 부시 대통령은 곧 발언을 철회했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 최고지도자의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고 있다.

이슬람권은 서구 언론들이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전파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CNN 등 주요 언론이 9·11 때도 세계무역센터(WTC) 참사 현장과 이라크 및 팔레스타인 등 아랍권에서 일부 국민이 환호하는 장면을 나란히 보도해 아랍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를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이 반세기가 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미국 등 서방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슬람권은 보고 있다. 아랍권에서 중도파에 속하는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도 9·11 직후 “미국이 팔레스타인 사태 등 중동문제를 제대로 처리했다면 이번과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국의 일방주의가 급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키웠고, 어떤 면에서는 표적이 되는 것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올 들어 파키스탄의 핵 물리학자 페르베즈 훗보이, 영국 출신의 작가 살만 루시디, 이집트 출신의 여류기자 모나 엘터호이 등 이슬람권의 지식인들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들을 통해 미국의 일방적인 외교정책을 비난했다.

물론 이슬람권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는22개 아랍연맹 회원국 장관들과 학자 종교지도자 언론인 등이 모여서 ‘문명간의 대화-충돌이 아닌 교류’라는 주제를 놓고 아랍연맹회의가 열렸다. 목적은 이슬람에 대한 서방세계의 편견을 씻고 문명간의 충돌을 대화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

회의에서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우리는 지금 이슬람에 대한 종교적 편견이 횡행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 스스로도 잘못한 것이 없는지,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문명을 타인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슬람권이 근대에 들어서 문명의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기독교가 거쳤던 종교개혁 등 자기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요즘도 합리와 이성이 종교적 근본주의에 의해 묻혀 버렸다”고 자기 진단했다.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는 지난해 12월 펴낸 ‘2002년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격차’라는 보고서에서 이슬람권의 47개국 중에서 민주주의국가는 23%인 11개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비이슬람 권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가 전체의 76%인 110개국이나 되는 것에 비하면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세계 부(不)자유국가 10개국 중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리비아 등 이슬람 국가가 6개나 포함돼 있다.


카불(아프가니스탄)〓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에드워드 사이드 컬럼비아대 교수 분석▼

미국 내에서 이슬람권의 논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에드워드 사이드 컬럼비아대 교수(사진). 서구사회의 문명에 대한 편견을 비판한 ‘오리엔털리즘’의 저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사이드 교수는 9·11 테러가 나자 백혈병으로 병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TV와 라디오 출연, 신문 기고 등 왕성한 활동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마녀사냥’을 비판해 왔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이집트 카이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50년대 초 미국에 건너와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63년 이후 줄곧 뉴욕에 거주한 ‘뉴요커’이면서 대니얼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시카고 교향악단과 협연할 만큼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9·11 테러 발생 한달 후인 지난해 10월 ‘무지의 충돌(The Clash of Ignorance)’이라는 글을 발표,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의 ‘문명의 충돌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9·11 테러를 저지른 용의자들이 이슬람 과격분자로 드러나자 서방 언론들이 이를 서구 대 이슬람문명의 충돌로 규정하면서 이슬람 전체를 ‘악마’로 몰고 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글에서 헌팅턴 교수가 서구의 고유한 문명으로 규정한 인본주의와 철학, 과학기술 등이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음을 지적하면서 서구와 이슬람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조악한 단순화이자 일반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11월 미 진보성향의 시사 월간지 프로그레시브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동조자들은 사이비종교인 다윗교나 옴 진리교와 다를 바 없는 소수의 광적인 집단”이라면서 “이들은 그들의 사악한 목적에 이슬람을 도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만약 이슬람을 죄악시한다면 이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드는 것”이라면서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미국이 이슬람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기울일 때”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미국이 이스라엘에 편향되고 중동 내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을 후원하는 것이 이슬람 과격세력에 반미주의를 선전 선동하는 구실로 쓰이고 있다면서 미국의 중동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했다. 아울러 빈 라덴을 체포한다는 구실로 테러와의 전쟁을 무한정 확대하는 미국을 소설 모비딕에서 흰 고래 모비딕을 쫓는 에이허브 선장에 비유하면서 무력으로 끝장을 보려는 것은 자기파멸적 결말을 예비하고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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