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기구 여성파워시대 막내리나

  • 입력 2002년 8월 27일 19시 00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지구정상회의가 열리는 가운데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이 회의의 산파 역할을 했던 그로 할렘 브룬틀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63·사진)이 ‘조용한 퇴장’ 의사를 밝혔다.

유엔기구들이 자리잡은 제네바를 좌지우지해온 여걸 브룬틀란 사무총장은 지난 주말 보도자료를 통해 5년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말 이후 재선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포기 이유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채 “나는 30년 동안 정계와 공직에 있었다. 재선된 뒤 5년 임기를 마치면 69세가 된다”고만 말했다.

브룬틀란 사무총장은 1981년 노르웨이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와 최연소 총리에 오르면서 국제사회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유엔사무총장의 위촉으로 83년부터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를 이끌었으며 ‘브룬틀란 위원회’로 명명된 이 위원회는 87년 ‘우리의 공통된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지구정상회의의 발족을 건의하는 이 보고서는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줬다.

브룬틀란 사무총장은 노르웨이 총리를 네 번이나 역임한 뒤 98년 1월 WHO 집행이사회에서 사무총장 후보로 선출됐다. 그는 비판을 많이 받았던 전임 히로시 나카지마 사무총장과는 달리 191개국이 참여하는 비대한 WHO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내과의사 출신인 그는 다국적 제약사들을 설득,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약을 비롯한 필수 약품의 가격 인하와 개도국 무료 보급까지 이끌어냈다. 지난 해 11월 WHO의 수장으로는 최초로 북한을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초의 여성 유엔사무총장을 노릴 정도로 정치적 야심을 키웠던 그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연임으로 정치적 날개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브룬틀란 사무총장의 퇴장은 지난 해 일본의 오가타 사다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 이어 올해 물러나는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 출신 메리 로빈슨 유엔인권고등판무관과 함께 제네바 유엔기구의 여성 수장 퇴장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마침내 제네바의 ‘여인천하’가 막을 내리는 것인가.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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