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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5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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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난해 9·11 테러이후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을 지지하면서 미국과 강력한 우호관계를 구축해 왔으나 최근엔 북한 이란 이라크 등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외교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미(對美) 견제 강화〓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23일 정상회담은 러시아의 대미 견제외교의 ‘완결편’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이후 이란 이라크와 경제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북한과도 협력체제를 굳힘으로써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거명한 3개국과의 관계를 한층 강화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또 23일 미국의 대(對) 이라크 군사공격에 반대 입장을 밝힘으로써 다시 한번 미국을 자극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은 러시아 언론과의 회견에서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생산, 비축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적극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에 앞서 17일 “이라크와 석유 농업 교통 철도 전기 등의 분야에서 400억달러 규모의 5개년 경제협력 협정 체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달에는 이란과 50억달러 규모의 원자로 5기 건설 지원 등을 포함한 10개년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푸틴의 ‘해트트릭’ 전략〓뉴욕타임스는 24일 “푸틴 대통령은 ‘악의 축’ 3개국과 모두 우호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대미 견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면서 “이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을 무시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경제력 강화를 통해 러시아가 세계적 강대국임을 미국에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로선 미국의 대 테러전 지원이라는 ‘명분’보다 경제라는 ‘실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22일 “미국은 러시아가 자체 이익을 추구하는 독자 세력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의 대 이라크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경제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은 연간 40억달러에 달하는 이라크의 석유수출 대금의 상당 부분을 챙기려는 의도가 가장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사타브 라니스 예일대 교수는 “최근 러시아의 외교적 행보는 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파기, 중앙아시아의 미군 주둔 등에 제대로 반대도 못했던 최근 2∼3년 동안의 무기력한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면서 “이는 푸틴 대통령이 미국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강대국 지도자라는 사실을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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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