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엔高' 일본경제 직격탄

  • 입력 2002년 7월 17일 18시 56분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에서 시작된 달러화 급락이 미일 경제를 ‘동반추락’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 경제가 간신히 활력을 되찾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발 엔고’라는 복병이 또 다시 일본의 발목을 잡아 세계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7일 도쿄외환시장에서는 엔화가치가 달러당 115엔대 후반까지 상승, 1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 초순보다 10엔가량, 2월 중순보다는 20엔이나 오른 수준.

▽엔화강세, 일본경제 직격탄〓일본 당국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달러당 115엔대를 넘나들자 주요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쿄증시의 닛케이주가도 17일 10,296.02엔에 마감돼 1만엔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닛케이주가는 일본당국이 5월 경기저점 선언을 한 직후 11,979.85엔까지 올라갔다가 한 달반 만에 2000엔 가까이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미국발 엔고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강한 달러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미국이 달러약세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무역적자 해소 등을 위해 달러약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당초 125∼130엔으로 잡았던 예상환율을 서둘러 수정하며 경영계획을 다시 세우는 등 비상체제로 돌입했다. 소니의 경우 현재의 환율 115엔대가 계속될 경우 올해 4500억엔 정도 매출이 감소하고 도요타자동차도 영업이익이 1000억∼2000억엔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경제 거품 붕괴론 대두〓달러화 약세가 계속되면서 미국경제의 거품이 본격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비관론이 일본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오비 도시오(小尾敏夫) 와세다 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닷컴불황 △판매업자의 코스트다운 불황 △통신회사의 과잉설비투자 및 과당경쟁 불황이 중복된 ‘트리플 불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오가이 히로시(大海宏) 게이와학원대학 명예교수는 엔-달러 환율이 연내 100엔선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수년 안에 95년의 달러당 79엔선까지 달러가치가 급락할 것으로 보는 전망도 있다.

이들 비관론자들은 미일 경제가 10년을 주기로 엎치락뒤치락 해온 점을 들면서 지난 10년간 일본이 부실채권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것처럼 이번에는 미국이 버블붕괴의 유산을 떠안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으로서는 미 경제 붕괴론을 반길 수만은 없는 입장. 일본이 완전히 회복세로 들어서지 못한 상황에서 미 경제가 침체로 접어들 경우 그에 따른 피해를 일본이 고스란히 안게 되기 때문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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