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반도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 인터뷰

  • 입력 2002년 5월 20일 18시 05분


셀리그 해리슨 미 국제정책센터(CenterforInternationalPolicy) 국제안보 프로그램 담당 국장이 최근 ‘코리안 엔드 게임:통일과 미국의 불개입을 위한 전략’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미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 중 ‘진보적 학자’로 분류되는 그는 30여년에 걸친 자신의 연구결과를 모두 이 책에 담았다. 17일 워싱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책의 내용과 평소 그의 소신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 책에서 북한이 붕괴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북한엔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고취시킨 내셔널리즘과 유교적 전통의 유산이 강하게 남아 있는 데다 94년 김 주석 사망시 군부에 의한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 이미 권력이 군부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경제난으로 지도부의 변혁이 일어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권좌에서 밀려나거나 사망한다고 해도 군부가 잡고 있는 권력체계엔 변화가 없을 것이다.”

-평소 연방제를 지지해 왔는데 연방제란 ‘1국가 2체제’를 의미하는가.

“그렇다. 연방제 하에서 남북은 각각의 체제와 군대를 유지하겠지만 상호 간에 더욱 많은 협력을 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북한은 점진적으로 한국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실질적인 통일이 언제될지는 예상하기 어려우나 연방제는 이보다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하다.”

-주한미군 철수문제도 언급했는데….

“나는 미국이 전략적 이유 때문에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미군이 예산 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데는 반대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북한이 후방으로 병력을 철수할 경우 미국도 미군 병력의 재배치나 공군의 철수 등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미가 ‘평화합의(Peace Agreement)’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72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후 30년간 이 문제를 연구해 왔다. 북-미 양자가 1953년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평화합의’를 맺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언젠가 평화협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북-미와 남북한이 각각 별도의 ‘평화합의’를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는….

“북한은 휴전선 부근 병력의 후방배치를 준비해야 한다. 휴전선에서 서울이 평양보다 더 가깝기 때문에 한국보다 북한이 병력을 후방으로 더 많이 빼는 비대칭적 후방배치가 있어야 한다. 또 한국과의 상호 군축 및 미국과의 제네바합의 이행도 중요하다. 북한은 경수로 건설 공정에 맞춰 단계별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해야 한다.”

-대북정책에 대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김대중(金大中) 정부 사이의 이견이 좁혀질 수 있다고 보는지.

“좁혀질 것 같지 않다. 부시 대통령은 김 대통령을 결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차기 대통령이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한국 차기 정권이 어떤 대북정책을 취하는지를 지켜보고 대북정책을 조율하게 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붕괴되고, 한국은 냉전시대의 대북정책으로 회귀하기를 기대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인들은 김 대통령의 일부 대북정책 전술에 이견을 갖고 있다고 해도 냉전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당신에 대해선 지나치게 진보적이고, 친북적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나는 친북이 아니라 친통일적(Pro Korean Unification)이다. 북한엔 내 적도 있다. 내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가 없다는 등의 글을 자주 썼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싫어한다. 나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북한의 입장을 알고자 노력할 뿐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셀리그 해리슨은 누구▼

셀리그 해리슨(75)은 워싱턴포스트 도쿄 지국장(1968∼1972) 시절부터 남북한 문제를 다뤄온 언론인 출신 한반도 전문가이다. 72년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인터뷰했으며 지금까지 모두 7차례 방북했다. 92년 미 카네기재단 관계자들을 이끌고 방북했을 때는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 사실을 최초로 알아내기도 했다. 또 북한 핵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94년 6월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보다 1주일 앞서 평양을 방문, 김 주석에게 미국의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미 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해온 탓에 ‘친북적’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모두 6권의 책을 냈으며 이번 저서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그의 첫 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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