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닫힌 사회로 가는중” 국내외 비판

  • 입력 2002년 5월 16일 18시 37분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가 아니다. 9·11 테러 이후 급속히 ‘닫힌 사회’로 가고 있다. 외국인은 유학생이든 관광객이든 사실상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간주돼 미국을 드나들거나 체류할 때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불편과 수모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인들 역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언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의 방문을 받게 될지 모른다. 공항, 공공기관, 쇼핑센터 및 거리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24시간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다.》

전화회사를 다니다 은퇴한 베리 레인골드(60)는 최근 헬스클럽의 라커룸에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난했다가 며칠 후 FBI 요원 2명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제보를 받았다며 찾아온 FBI 요원들이 발언 내용과 경위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

또 인디펜던트 미디어라는 진보적 단체를 위해 가끔 자원봉사를 해온 한 컴퓨터 기술자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이 단체의 컴퓨터 시스템을 알려달라는 FBI의 요구에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CBS방송은 14일 “최근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FBI가 과거 법을 무시하고 미국인을 철저히 감시했던 에드거 후버 국장 시절로 회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FBI의 과잉수사 사례를 고발했다.

미국은 이처럼 더 이상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가 아니다.

워싱턴 경찰국에 설치된 ‘공동작전 지휘센터’에선 경찰 FBI 비밀경호국 등의 기관이 시내 주요 지점에 거미줄처럼 설치한 감시 카메라 및 지휘센터에 연결된 민간기업 쇼핑몰 등의 감시용 비디오를 통해 시민들을 지켜보고 있다. 백악관 의회 등 주요 공공기관 주변의 행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9·11 테러 이후 공항의 검문 검색은 살벌하기만 하다.

14일 워싱턴 덜레스 공항. 한 검색요원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한 한 남자 승객에 대해 정밀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는 승객의 신발을 벗게 한 뒤 신발에 폭발물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폈다. 이어 승객을 의자에 앉힌 뒤 발을 직접 손으로 만져가며 혹시 양말 속에 흉기를 숨기지 않았는지를 조사했다.

옆에선 다른 검색요원이 여자 승객의 핸드백을 뒤지고 있었다. 이 승객은 오가는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보는 가운데 소지품을 샅샅이 검색당하는 것에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달 초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이용한 한 승객은 비행기 탑승 직전 여성 검색요원이 정밀검색을 하겠다며 옆으로 불러낸 뒤 허리띠까지 풀게 하고 손으로 몸을 더듬는 바람에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미국의 공항에선 검색요원이 승객들의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컴퓨터가 폭발물이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이를 작동해보게 하거나 심지어 생수통을 들고 있는 승객에겐 이를 마셔보도록 요구하는 등의 강도 높은 검색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14일 서명한 ‘국경경비 강화 및 비자 입국 개혁법안’에 대해서도 사실상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반영한 조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미국의 관광업계는 이 같은 조치로 외국인 관광객의 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관광대행업체연합의 빌 말로니 부대표는 “이번 조치는 현실성을 결여한 것”이라며 “시행에 앞서 국내외 여행사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로마가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는 이민족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했던 점이 꼽힌다. 다민족 사회인 미국도 그런 ‘열린 사회’를 지향하며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미국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 하의 사회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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