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대사가 말하는 ‘佛 대선결과 의미’

  • 입력 2002년 5월 7일 18시 38분


프랑수아 데스쿠에트 주한 프랑스 대사(왼쪽)와 이창훈 한라대 총장.
프랑수아 데스쿠에트 주한 프랑스 대사(왼쪽)와 이창훈 한라대 총장.
6일 끝난 프랑스 대선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정치·경제·사회 현실에 많은 검토 과제를 남겼다. 이번 대선을 단순히 극우파의 약진이라든가, 좌파의 분열로만 특징짓기는 어렵다. 그 밑바닥에는 세계화와 유럽통합 등 국제질서의 재편에 따른 프랑스인들의 불안감과 무력감이 숨어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설명이 프랑스에만 국한되는 얘기일까. 지난해 7월 부임한 프랑수아 데스쿠에트 주한 프랑스 대사와 이창훈(李昌訓) 한라대 총장은 6일 프랑스 대사 관저에서 대담을 갖고 이번 대선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 보았다.

▽이창훈 총장〓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재선은 프랑스 보수 우익 세력의 정치적 승리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당선이 프랑스 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데스쿠에트 대사〓1차 투표 결과 33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 정치의 양대 축인 공화당연합(RPR)과 사회당(PS)이 서로 맞붙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전체 유권자 4000만명중 27%가 투표에 참가하지 않아 사상 최고의 기권율을 기록했다. 이는 프랑스 정치의 ‘비기능화’를 의미했다. 그러나 결선 투표에서 나타난 시라크의 압승과 높은 투표율은 프랑스 정치가 제 기능을 회복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90년대 중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시발로 서유럽 정치에서 좌파 집권이 압도적이었는데 현재는 눈에 띄게 우경화되고 있다. 서유럽의 극우파 바람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는가.

▽데스쿠에트〓서유럽의 극우파 바람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 프랑스의 경우 극좌파와 극우파 지지 세력은 각각 4%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이미 지적한대로 극우파의 득세는 기존 정치세력, 특히 좌파의 분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의 부상을 계기로 프랑스 결선투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데스쿠에트〓“58년 제5공화국부터 시작된 결선투표제는 주요 정당들에게 1차 투표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다양한 의견을 흡수해 당 정책에 반영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1차 투표는 양극화 이전(Pre-Polarization) 단계로 다양한 정치적 이념을 지닌 정당들에 문호가 열려있다. 결선투표는 1차 투표에 나타난 민심을 흡수한 주요 정당들간의 대결이다. 즉 주요 정당들에 ‘재편성(Shuffling)’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프랑스 정치에서 결선투표제는 대체적으로 잘 운영돼 왔으나 이번 대선에서는 오히려 르펜이 급부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그렇지만 이번 대선에서 무려 16명의 후보가 입후보한 것은 자칫 정치를 희화화할 위험성도 있지 않은가.

▽데스쿠에트〓군소 후보의 난립은 정치의 중요성이 반감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 이념 대결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의 프랑스인들은 좌파 우파의 개념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믿고 있다. 그만큼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 갖는 상대성이 부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정치 결정권의 주체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프랑스에서 국가 통치에 필요한 정치적 결정의 90% 이상이 정치인들이 아닌 행정가들에 의해 내려지고 있다. 그만큼 이념 대결의 장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프랑스만의 현상이 아니다. 영국 독일 등지에서도 전문 행정인력들이 주요 결정권을 행사하면서 정치에서 ‘이념적 완화(Ideological Relax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이제 관심은 내달 9일 실시되는 총선으로 옮아가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우파 대통령에 우파 내각이 탄생할 것인지, 아니면 전력을 재정비한 좌파가 승리를 거둬 ‘좌우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가 재현되느냐이다. 개인적으론 우파 내각의 탄생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본다. 이번 대선부터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가 7년에서 5년으로 단축되면서 권한이 축소되기 때문에 좌파내각 집권을 통한 권력균형의 필요성이 그만큼 줄어들었다. 또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의 은퇴로 구심점을 상실한 것도 좌파로선 부담이 될 것이다. 게다가 서유럽의 정치 사이클도 우경화 추세다.

▽데스쿠에트〓지금까지 프랑스 정치에서 동거정부는 세 차례 등장했다. 프랑스에서 동거정부는 개인 기업의 이념을 도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즉 최고책임자(대통령)가 결정을 내리면 밑에 있는 이사회(내각)가 이에 대해 심사를 하는 것이다. 동거정부는 프랑스 정치가 이념 대결 문화에서 결과 중심적 문화로 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즉 정치적으로 구체적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대통령과 내각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운영되는 동거정부에서는 대통령과 내각이 손발이 맞지 않아서 국정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똑같이 막강한 권한을 발휘하는 대통령과 총리가 경제자유화 실업 복지 등 주요 개혁 앞에서 문제 접근 방식부터 틀리기 때문에 오히려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몇 차례 경험한 동거정부의 성과를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이번 총선에서 밝혀질 것이다.

▽이〓프랑스 대선은 유럽의 정치통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데스쿠에트〓유럽통합은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전 유럽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규칙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주권과 서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극우파는 유럽통합이 주권 상실을 가져올 지도 모른다는 일부 국민의 우려를 이용하고 있다.

▽이〓시라크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유럽-아시아의 관계 강화를 주장해 온 지도자이다. 이는 국내 정치적으로 볼 때 아시아계 이민의 규모와 역할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중국계 이민자들은 이미 70만명을 넘고 있다.

▽데스쿠에트〓시라크 대통령의 유럽-아시아간 결속 확대 정책은 경제적 측면이 크다고 본다. 북미 서유럽 동북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3대 축이다. 이중 북미-서유럽과 북미-동북아는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반면 서유럽-동북아 관계는 결속력이 부족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200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해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과거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한국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의 재선으로 한-프랑스 관계가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본다.

▽이〓프랑스는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중 아일랜드와 함께 북한과 수교하지 않은 2개국 중 하나다. 프랑스는 북한과 수교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무엇을 내걸고 있나.

▽데스쿠에트〓4가지 조건을 제시해 왔다.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확산 금지, 북한 구호물자의 적절한 사용, 인권상황 호전, 남북한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중 특히 중요한 것은 남북한 대화와 인권 문제이다. 최근 4차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재개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인권 문제에 대해서 프랑스는 북한 측에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북한 측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표명하고 상황 호전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는다면 프랑스는 대북(對北)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이창훈(李昌訓·48) 총장▼

△한국 외국어대 졸업

△프랑스 파리 10대학 정치학 박사

△한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한국유럽학회 회장

△원주 한라대학교 총장

△아셈연구회 회장

△저서 ‘EU: 정치·경제·법’ ‘한구외교사Ⅰ·Ⅱ’ ‘중국의 대외정책(역)’

▼프랑수아 데스쿠에트 대사(53)▼

△프랑스 파리정치학교(IEP)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파리국립대학교 법학과 공법 전공

△주일대사관 서기관 역임(77∼81년)

△주인도 대사관 참사관 역임(81∼85년)

△주우간다 대사 역임(93∼98년)

△외무부 감사관 역임(98∼2001년)

△2001년 7월 주한 프랑스 대사 부임

△서훈: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레지옹 도뇌르 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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