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따로 회계서비스 따로”

  • 입력 2002년 2월 8일 17시 58분


“아서 앤더슨을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미국 5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언스트&영사의 제임스 털리 회장이 5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경쟁사인 앤더슨에 대한 구제를 촉구했다.

“앤더슨이 망할 경우 회계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회계사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를 확산시킬 것이다.”

그의 호소에는 앤더슨에 대한 불신이 5대 회계법인 전체로 확산돼 공멸할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배어 있다. 앤더슨은 엔론사에 대한 부실 회계감사와 주요 회계서류 파기로 엄청난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시장의 인프라에 해당하는 회계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으로 7일까지 닷새 연속 주가가 하락했고 의회는 회계업에 대한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5대 회계법인은 신뢰를 되찾는 한편 의회등의 강도 높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개혁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회계법인의 자기개혁안〓딜로이트 투치 토마추사는 6일 컨설팅과 회계서비스를 분리하겠다고 발표, 지난주 이미 분리를 다짐한 4개 회계법인에 합류했다.

그동안 5대 법인은 같은 회사에 외부감사와 컨설팅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면서 돈벌이에만 치중해 독립적이고 엄격한 감사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앤더슨의 경우 지난해 엔론으로부터 외부감사로 2500만달러, 컨설팅서비스로는 이보다 많은 27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서비스를 분리할 경우 회계법인의 수입은 격감할 전망. 딜로이트는 지난해 전체 매출액 124억달러 중 컨설팅서비스로만 35억달러를 기록했다. 딜로이트측은 “대중의 불신이 워낙 깊어 분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6일 전했다.

털리 회장은 회계사들을 감독할 새로운 기구의 설립을 제안했다. 상호감리제도(peer review)를 통해 회계법인끼리 서로를 감리하는 현행 시스템을 바꿔 미국회계사협회가 아닌 다른 기구를 만들어 회계사들을 감독하자는 것.

또 회계사들을 경영진이 고용하는 현행 제도를 바꿔 회사 감사위원회가 직접 회계사를 고용하는 방안도 나왔다. 경영진을 감시하는 회계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회계정보를 보다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작성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근본적 개혁안〓의회와 월가에서 내놓은 개혁안은 보다 근본적이다. 회계법인은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기업으로부터 다른 서비스를 일절 맡지 않도록 규제하는 방안이 그 중 하나. 이에 대해 회계법인들은 세금업무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아서 레비트 전 증권감독위원장은 7년 간격으로 회계감사 업체를 바꾸도록 규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부정을 저지를 경우 7년 뒤 다른 회계법인이 적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이에 대해 털리 회장은 같은 회계법인 안에서 회계사만 바꾸자고 맞서고 있다.

어떤 개혁안이 채택될지는 결국 5대 법인의 로비력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컨설팅과 외부감사의 분리는 이미 레비트씨가 위원장 재임 때인 2년 전 제안했지만 5대 법인의 집요한 로비로 법안 통과단계에서 무산된 바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미 회계법인측의 개혁안
- 회계감사와 컨설팅 서비스 분리
- 독립적인 회계사 감독기구 설립
- 기업 감사위원회, 회계사 직접 고용
- 기업회계 내용 알기 쉽게 작성
미 의회 등이 검토중인 개혁안
- 회계감사 외 다른 서비스 일절 금지
- 기업들은 회계법인 7년마다 교체
- 주요 기업 회계정보 즉각 공개

▼엔론 前現임원 4명 청문회 증언 거부▼

미국 의회가 엔론 파산사태와 관련된 청문회를 열고있으나 증인으로 채택된 핵심 인물들이 잇따라 증언을 거부하거나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어 진상 파악에 애를 먹고 있다.

7일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 감독조사소위에 출석한 앤드루 패스토 전 재무책임자(CFO)를 비롯한 엔론의 전현직 임원 4명은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수정헌법 5조를 들어 답변을 거부했다.

앞서 케네스 레이 전 회장이 의회 청문회 출석 자체를 거부해 상원 상무위원회가 소환장 발부를 결정했으나 레이 전 회장 역시 의회에서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증언을 거부한 패스토씨는 재무책임자로 있으면서 엔론사가 수억달러의 적자를 은폐하는데 동원한 제휴업체와의 관계 설정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이밖에 증언을 거부한 마이클 코퍼 전 국제금융담당 전무와 리처드 코시 회계책임자, 리처드 바이 위기관리책임자 등도 엔론사태 전모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증인으로 간주돼 왔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서는 작년 8월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제프 스킬링이 증인으로 나와 “퇴임 당시 회사가 탄탄한 재정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믿고 있었다”면서 패스토씨가 주도한 제휴계약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AFP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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