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분쟁 해결 '평화 전도사' 사이러스 밴스 타계

  • 입력 2002년 1월 13일 18시 50분


‘국제 분쟁의 해결사’로 이름을 날렸던 전 미 국무장관 사이러스 밴스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 12일 뉴욕 시나이 메디컬센터에서 세상을 떴다고 아들 밴스 2세가 발표했다. 향년 84세.

밴스 전 장관은 68년 북한의 청와대 기습사건(1·21사태) 직후 미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해 불안해하던 한국정부와 국민을 안심시킴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한미 안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는 60년대 후반 미국의 한반도 평화유지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77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 의해 다시 국무장관으로 기용된 그는 80년 4월 카터 정부가 이란 정부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던 52명의 미국인을 구출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폈을 때 이에 반대하고 사임했다. 이 군사작전은 끝내 실패로 끝났다.

카터 정부 시절 그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종종 불화를 빚기도 했는데 두 사람 사이의 불화는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국무부와 백악관의 역할 분담과 갈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례연구가 되기도 했다.

조용하지만 성실하고 진지한 협상자세로 존경을 받았던 그는 정계를 떠난 후에도 유엔 특사 자격으로 91년 피로 물든 유고 분쟁에서 휴전을 이끌어냈고 평화유지군 파견의 길을 열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캠프데이비드 협상, 파나마운하 협약, 구(舊)소련과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타결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2년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밴스 전 장관은 해군에 입대, 태평양전쟁에 참여했으며 57년 상원 군비소위원회 특별 자문관으로 정부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외향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의 전임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달리 조용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성격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3일 성명을 통해 “밴스 전 장관은 평화와 인권을 옹호한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하고 “미국인과 전 세계는 그의 우정과 친절, 인도주의적 업적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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