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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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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과 BBC방송, AP AFP통신 등 세계 주요언론들은 미군의 공습 이후 처음으로 14일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민간인 피해상황과 현지인의 목소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의 초청으로 이틀간 잘랄라바드 등 미군의 주요 공습지역을 방문한 이들이 전해온 첫 소식은 ‘핏빛 참상’ 그 자체였다. 다음은 기사 요약.
▼한마을 잿더미…공항엔 금곡파편만 널려▼
▽폐허로 변해버린 카람〓주요 공습 대상이 된 잘랄라바드의 인근 ‘카람’마을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은 것은 삽과 막대기를 흔들며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현지인의 눈빛이었다. 그들은 안내를 맡은 탈레반군 장교에게 “이들은 우리를 죽이러 왔어요. 어디에 폭탄이 떨어질지 물어 보세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탈레반군 장교는 다급하게 이들을 제지했다.
안내원은 사흘간의 미군 폭격으로 마을이 초토화되고 200명에 가까운 무고한 민간인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주민 굴 모하메드는 “이곳은 군사기지가 아닐뿐더러 희생당한 사람은 모두 민간인이었다”며 “미국도 이곳에 빈 라덴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우리를 공격하느냐”고 울부짖었다.
죽은 사람을 곧바로 매장하는 이슬람의 전통 때문에 공습이후 희생자를 집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했다.
▽사라진 잘랄라바드 공항〓한때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와 국제사회를 연결했던 잘랄라바드 공항엔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전선과 기둥만이 공항이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할 뿐 곳곳에는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폭격으로 인한 거대한 분화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탈레반 정권에 의해 첫 방문지로 안내된 이곳이 과연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공항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곳곳에는 건물잔해와 함께 공격에 사용된 미사일의 금속 파편들이 널려져 있었다.
▼생후 2개월아이 온몸붕대…병원 아비규환▼
▽아비규환의 잘랄라바드〓카람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잘랄라바드의 한 병원에는 공습으로 부상한 23명 중 태어난 지 불과 2개월밖에 안된 어린이도 있었다. 피로 물든 붕대로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어린이를 지켜보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인근 병원에는 공습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채 부상한 사미나(5)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두 개의 사과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 소녀는 머리에 동여맨 붕대 사이로 14일 처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했지만 전혀 말을 하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했다.
그 옆 침대에는 아들을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13일 폭탄이 터질 때 부상한 생후 6개월 된 아들은 화상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쉴새 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뒤로 한 채 카람 근교에 마련된 묘지를 찾았다. 새로 생긴 18개의 묘지가 눈길을 끌었다. 2개는 아주 작게 지어진 어린이 무덤이었다. 묘지 한 쪽에서 한 노인이 무릎을 꿇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이 노인은 우리가 외국기자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적개심을 나타내더니 우리를 향해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마을로 접어들수록 전쟁의 처참함을 증명하듯 피로 물든 담벼락과 양과 염소의 잔해가 가을햇살을 받으며 을씨년스럽게 널려 있었다. 아내와 5명의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는 토레이는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모든 참상을 미국인에게 전해달라”며 통곡했다.
▼카불 유령도시 변모… 식량부족 고통 가중▼
▽절망적인 카불〓‘전쟁은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욱 냉혹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미군의 공습 이후 두려움과 공포만이 엄습하고 있는 카불시에서 더욱 절망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역시 가난한 민간인들이었다.
자동차 부품상인 모하마드 나비(41)는 “공습이 시작되자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결국 나도 아내와 애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는 “고통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며 공습 중단을 호소했다.
공습은 한순간에 탈레반의 수도 카불을 유령도시로 변모시켰다. 택시운전사 무스타파(38)는 “하루종일 손님을 태우기 위해 카불시를 헤매고 다녔지만 이 도시에서 승객은 이미 사라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 국방부가 13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 도중 900㎏의 폭탄을 카불 인근 의 주거지역에 잘못 투여했다고 밝혔듯이 전통적으로 진흙집에서 살고 있는 서민들의 희생이 컸다. 이들은 1.6㎞ 떨어진 카불공항이 폭격당하면서 덩달아 피해를 보게 됐다.
한 전직 교사는 “탈레반은 우리에게 테러를 강요하고 있다”며 “전쟁이 유일한 해결책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근 뉴아바드에 살고 있는 압둘 하디(64)는 “우리는 구 소련의 침략이후 22년 동안 이런 전쟁에 익숙해져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식량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리〓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