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이슬람국가들 극렬 반미시위 몸살

  • 입력 2001년 10월 13일 19시 06분


아시아 이슬람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습 이후 시위와 분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의 공습이 시작된 후 처음 맞는 이슬람 예배일인 12일을 기점으로 인접국인 파키스탄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이란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각국에서는 최대 규모의 반미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들은 방화와 약탈을 저지르기도 했으며 자국내 미국인 등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과 필리핀은 최근 미국의 공습에 발맞춰 자국내 과격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대한 일제 소탕작전에 나섰다.

▽인도네시아〓자카르타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12일 수만명의 시위대가 금요일 합동 기도를 올린 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자카르타에서 500여명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서부 자바의 반둥에서는 1000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이며 미국과의 즉각적인 외교 단절을 촉구했다. 동부 자바 수라바야에서는 시위대가 주의회 건물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최근 최대 이슬람 단체 소속의 함자 하즈 부통령이 ‘대미 지하드(성전) 참전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겠다’는 인도네시아 무슬림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데 대해 경고하는 등 정·부통령간 알력이 나타나고 있다.

함자 부통령은 13일에도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면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해 12일 메가와티 대통령이 “말레이시아는 테러와의 전쟁 대열에 함께 서있다”고 말한 것과 대조를 보였다.

미국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시위가 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비상시 자국민이 타고 갈 전세기 4대를 인근 싱가포르에 24시간 비상대기시켜 놓은 상태다.

▽파키스탄〓최대 이슬람 급진 정당인 자미앗 울레마 이슬라미(JUI)는 13일 미국에 대한 지하드를 정식 선포하고 14일 자코바바드 등 미군이 사용중인 공군기지를 포위해 시위하고 15일에는 전국 총파업을 일으키겠다고 경고했다.

12일에는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비롯해 남부 카라치, 군사도시인 퀘타 라호르 등지에서 수만명이 반미·반영·반정부 시위를 벌였으며 이 와중에 보안군 1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특히 카라치에서 과격시위가 벌어지자 정부는 군 병력을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13일 “시위대에 엄중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3000명 이상의 이슬람 교도들이 콸라룸푸르의 미국 대사관으로 몰려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다음 공격 목표”라며 경찰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미국에 대해 성전을 선포한 제1야당인 범말레이시아 이슬람당(PAS)이 주도했다. 이 당은 1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성전에 참가할 무자헤딘들을 현지로 급파했다고 발표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으로 테러가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의 공격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12일 수도 다카 등지의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마친 1만명 이상의 이슬람 교도들이 미국 국기와 부시 대통령의 인형을 곳곳에서 불태우며 반미 시위를 벌였다. 휴양 도시 콕스 바자르 인근 고속도로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는 이날 고장 난 버스와 충돌해 최소 11명이 숨지고 12명 이상이 부상했다.

▽이란〓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파키스탄 국경에 인접한 자히단, 아프가니스탄 접경 마샤드 이스파한 타브리즈 시라즈 부셰르 하메단 반다르 압바스 등지에서 12일 반미 반파키스탄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다. 테헤란에서는 2만여명의 시위대가 집회를 갖고 반미 극렬구호를 외치며 미국 공습 이후 최대의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는 2명의 각료도 참석했다. 특히 남동부 자히단의 시위대는 파키스탄 영사관에 돌을 던졌으며 성조기를 불태웠다.

▽필리핀〓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13일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과 관련한 허위 소문을 막기 위해 정부 기구 내에 ‘사실 확인 핫라인’을 설치키로 했다. 최근 마닐라에서는 일부 초등학생들사이에 휴대전화로 “화학전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긴급 휴교에 들어가는 등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12일에는 마닐라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시위 대 수백명이 몰려가 밤 늦도록 반미 시위를 벌였다.

최근 정부군은 미국 공습을 전후해 남부 바실란섬 등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이슬람 반군 아부사야프 게릴라 소탕작전을 펴서 5명을 사살하고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중국〓중국군은 미군 공습 이후 서부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를 중심으로 중국 내 이슬람 분리독립주의자들을 상대로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은 10일 러시아의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 등에게 “중국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피해받고 있는 희생자”라며 강력한 소탕의지를 밝혔다. 중국 당국은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이 탈레반의 지원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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