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10월 11일 01시 2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수세기에 걸쳐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종교전쟁은 우리와 타인, 선과 악, 흑과 백 등 지나치게 단순화된 대립구도에 열광적으로 집착한 데서 비롯했다.
서양은 흔히 경제적 팽창주의 탓이긴 했지만 다른 문명들에 호기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서양은 너무 자주 다른 문명을 철저히 멸시했다.
19세기 중엽부터 꽃피기 시작한 문화인류학에서 배워야 할 진정한 교훈은 어떤 문명이 다른 문명에 비해 우월하다고 말하려면 비교의 변수들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적 분석만으로는 문명의 우열을 논하기 부족하다. 발전된 과학기술을 들어 서양문명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행기나 자동차가 없더라도 오존층에 구멍이 없는 건강한 자연 속에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변수를 역사에서 원용하기도 힘들다. 역사란 양날을 가진 칼이니까. 오사마 빈 라덴이나 사담 후세인은 서구문명의 사악한 적이지만 서구문명 내에도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물들이 존재했다. 변수의 문제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제기된다.
많은 사람이 금융거래의 비밀이 지켜지는 게 선이라고 믿지만 그 비밀이 테러 자금을 숨겨두는 데 이용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변수에 대해 끊임없는 논의를 해야 한다. 우리의 확신이 세워지는 토대인 이 변수들을 분석하고 토론하도록 교육기관은 가르쳐야 한다. 지금까지 서양은 다른 문명을 연구하는 데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다른 문명이 서양 문명을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데는 극히 인색했다.
나는 다른 문명의 원리주의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가 자신들의 원리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믿는다.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기독교적인 성전(聖戰)의 의미에 대해 연구하면 그들은 이슬람적 성전에 보다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정리〓박제균파리특파원>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