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시신 처리 美정부 딜레마

  • 입력 2001년 10월 7일 19시 16분


미국 델라웨어의 도버 공군기지 내 시체안치소 냉동트럭에는 수십개의 플라스틱 가방이 들어 있다.

이 가방에 담겨 있는 시신 몇 구가 미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영국 더 타임스지가 26일 보도했다.

이들 시신은 지난 달 미 국방부 청사와 펜실베이니아 비행기 추락 현장에서 발견돼 이곳으로 옮겨진 것들. 시신들은 모두 크게 훼손됐기 때문에 신원이 파악되려면 DNA 검사를 거쳐야 한다.

벌써 사망자들의 유품 중 면도기나 칫솔 등에 남아 있는 유전적 물질에서 추출한 수백개의 DNA 샘플이 메릴랜드주 로크빌의 미군 병리학 연구소(AFIP)에 넘겨졌다.

문제는 미국이 테러범으로 추정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신.

미 당국은 지문이나 치열 감식 등 ‘전통적인 방법’을 통해 테러범들의 시신 몇 구를 찾아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테러범의 시신을 본국의 유족들에게 돌려준다면 한바탕 소란이 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분노한 미국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은 물론이고 테러범들의 시신이 묻힐 무덤은 또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에의 적의를 키우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

그렇다고 시신을 넘겨주지 않는 것도 미국 정부가 표방하는 인도주의와 어긋난다. 한 미국 관리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자라도 시신을 부모 품에 돌려주는 것이 미국다운 처사”라고 말했다.실제 미국은 99년 이집트에어 소속 여객기를 몰고 대서양에 뛰어든 가밀 엘 바투티의 시신을 지난 해 은밀하게 이집트의 가족들에게 넘겨줬다.이런 딜레마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일단 테러범들에 대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향후 몇 년간 시신을 미국 내에 한시적으로 억류(?)할 것이란 관측이 현재로선 유력하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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