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號 추락하는가… 국내외-黨안팎 역풍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38분


취임 초 80%가 넘는 지지율을 배경으로 단숨에 개혁을 이룰 것 같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기세가 꺾이고 있다. 국내외와 당 안팎에서 강한 ‘역풍’이 불어닥치자 그는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다.

우선 관료 사회의 저항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

각 성청 산하 157개 특수법인에 대한 폐지 또는 민영화에 관해 3일 해당 성청이 제시한 의견은 대부분 ‘폐지·민영화는 절대 불가’였다. 특수법인 개혁은 고이즈미 총리가 총재 선거시 제시했던 구조개혁안의 핵심사항 중 하나다. 관료 조직의 저항은 예상했지만 이처럼 정면 도전을 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총리실 분석이다. 이를 돌파하지 못하면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 이미지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경제도 엉망이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1만1000선이 무너지면서 1만선이 깨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개혁을 지지한다던 국민도 실업률이 5%대를 넘어서자 동요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주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구조개혁을 우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당의 수뇌부에서도 구조개혁보다는 경기부양을 먼저 해야 한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정치적 운명을 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외교도 안 풀린다. 그는 원래 외교에는 문외한이다. 외무성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데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은 오히려 짐만 지우고 있다. 걸핏하면 관료들과 충돌해 경질 필요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역사 왜곡 교과서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강행으로 비롯된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정상회담으로 풀어보려 했지만 양국이 사실상 이를 거부해 체면만 구겼다.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60%대로 떨어졌다. 그동안 높은 대중 인기 때문에 눌려 지내왔던 당내 비주류 인사는 서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최근 경제, 외교, 우정사업, 총리직선제 등을 논의하는 사적간담회를 잇달아 만들자 “총리가 대통령처럼 행동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전문가 의견을 듣는 것은 좋지만 정책결정 과정에서 당을 배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저항 세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고이즈미 총리는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자주 보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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