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 '빈손회담'…'무용론' 본격 제기

  • 입력 2001년 7월 22일 18시 45분


"준비에 막대한 예산과 인원이 투입되는 정상회의는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현재와 같은 규모가 크고 공식적인 회의 형식은 재고해야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20∼22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끝나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회의론이 쏟아져 나왔다. 회의에 참가했던 정상들 중에서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강대국 정상들의 국내정치용 쇼 이라는 비판을 들어온 G8 정상회의에 본격적인 무용론(無用論)이 제기된 것.

세계를 움직이는 정상들의 모임이 이처럼 폄하된 직접적인 이유는 회의 내내 지속된 격렬한 시위와 사망자 발생이라는 근래 보기 드문 악재 때문. 무려 15만여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과연 정상적인 회의 진행이 가능했겠느냐는 의문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회의론이 제기된 근본적인 이유는 이번 회의가 '예고된 실패'를 답습했기 때문. 최대 의제였던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 실천 합의는 유럽 정상들이 공동전선을 폈음에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쳐 무산됐다.

핵심 의제인 미사일방어(MD) 체제도 G8 정상회의에서는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의 폐막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별도로 가진 개별 정상회담에서 MD와 핵무기 감축을 연계시켜 협상을 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약간의 성과를 이루었다.

G8 정상회의가 출범 당시의 이념에서 벗어나 정상들의 경연장(競演場) 으로 변질됐다는 비난도 설득력을 지닌다.

이런 비판이 제기되자 G8 정상들은 내년 캐나다 앨버타에서 열리는 차기회의는 70년대 중반 선진 5개국 정상들이 가졌던 비공식 회의 형식을 취하기로 합의했다. 또 이번 회의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무려 900명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600명을 대표단으로 거느리고 참석하는 등 회의 규모가 지나칠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시선을 의식해 다음 회의부터는 전체 대표단 규모를 400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 방안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입은 상처가 쉽게 치유될 것 같지 않다. 이번 회의는 범세계적인 에이즈 기금 창설 등 일부 가시적인 성과가 있긴 했지만 G8 무용론과 유혈사태에 가려 그 의미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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