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보스니아 어린이농구교실 "우리는 전쟁몰라요"

  • 입력 2001년 5월 4일 18시 36분


미국인 농구코치 돈 케이지(왼쪽)
미국인 농구코치 돈 케이지(왼쪽)
“대사님의 재미없는 연설을 들을까, 아니면 농구를 할까.”

미국인 농구코치 돈 케이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린이들은 일제히 “와” 함성을 지르며 코트로 달려나갔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패스와 기본전술을 익힌 뒤 경기가 시작됐다.

3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 있는 한 체육관에서 열린 ‘어린이 농구클리닉’. 내전의 아픔을 이기고 한 자리에 모인 여러 민족 50여명의 어린이 손에는 농구공이 들려 있었다. 마치 어린이날을 맞은 한국의 어린이들 같았다. 반바지 차림의 토머스 밀러 보스니아 주재 미 대사는 기쁜 표정으로 이들을 지켜보았다.

민족 종교 분쟁으로 31년 넘게 싸워온 보스니아에서 세차례의 어린이 농구클리닉을 마련한 케이지씨는 미국 프로농구(NBA) 뉴저지 네츠와 LA클리퍼스 코치 출신. 전쟁에 지친 어린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평화와 화합의 마음을 심어주려고 이곳을 찾았다.

지난달 30일 바냐루카와 1일 투즐라에서 열렸던 농구클리닉엔 예상 인원의 3배에 가까운 130명씩의 어린이들로 체육관이 가득 찼다. 어른들은 서로 싸우는 이슬람계 크로아티아계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3일에도 오전 오후로 나눠 50명씩의 어린이가 함께 뒹굴었다.

케이지씨는 어린 선수들을 향해 계속 ‘파이팅’을 외쳤고 골이 터질 때마다 박수와 함성으로 체육관이 진동했다. 짙은 전쟁의 그림자가 한순간에 사라진 아이들의 얼굴은 땀과 웃음으로 빛났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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